
오늘부터 사실상 설 연휴가 시작된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지만 양력 새해를 한 참 전에 시작한 터라 음력 새해라는 문화적 의미는 조금씩 시들해져왔다. 농업과 어업에서는 여전히 음력의 절기가 유용하지만 일상은 양력이 지배한지 오래이다. 나이 기준만 해도 양력 기준의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이 나올 정도이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쳐주는 문화가 없어지면 설 상에서 '떡국'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명절 분위기 망치기로는 코로나19 만한 원흉이 없다. 이번 설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세 번째이다. 2020년 설 연휴는 국내 코로나19 발생 직후에 시작됐다. 당시엔 공식 명칭 없이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우한 폐렴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제 이름을 찾자 순식간에 공포가 확산됐고 사상자가 속출했다. 사람들은 이동을 멈추고 거리는 어두워졌다.
2021년 설날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명절이 됐다. 경기도민 85%가 귀향을 포기하고, 64%는 연휴 '집콕'을 선택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명절 귀향을 종용하는 시댁을 고발하자는 며느리들의 항변이 온라인에 가득했다. 재고 폭탄에 산화한 전통시장 상인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최악은 올해 설날이다. 코로나19 감염이 폭발하는 시점과 겹쳤다. 이달 중순 3천~4천명대이던 확진자 수가 27일 기준 1만4천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 탓이다. 일일 확진자 규모가 늘자 정부의 방역대책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감염자를 놓칠 우려가 있다며 한사코 거부했던 간이검사를 시작했고, 확진자 폭증에도 현재의 느슨한 방역대책을 유지한다는 말도 들린다. 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 집단감염을 집단면역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코로나19 3년 차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수천 년 각인된 문화적 본능이 강력하다. 고향과 가족을 찾는 집단적 회귀본능을 신뢰를 상실한 정부의 호소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래도 오미크론은 가장 악질적인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다. 치명률은 낮지만 많이 걸리면 사망자도 늘어난다. 의료현장이 붕괴되면 응급, 위급환자가 덩달아 위험해진다. 정부가 믿음직해서가 아니다. 설 문화를 공유하는 연대로 우리 스스로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올해 설까지는 이동을 자제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