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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씨 유족 측은 지난 4일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았다. 찬희씨 배우자는 심의가 끝난 뒤 "찬희씨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고, 가스라이팅을 했던 사내 분위기가 문제라고 위원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찬희씨를 떠올리던 그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2021.2.4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 등으로 숨진 현대차 디자이너 고 이찬희 책임연구원(1월 19일자 7면 보도=과로사 호소에 은폐 의혹까지… 촛불 든 현대차 동료들) 산재 신청 결과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나온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이 앞으로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한 산재 인정에 있어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찬희씨 유족 측은 지난 4일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았다. 심의는 이날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위원들은 현대차 임직원에 이어 이찬희씨 유족을 만났다.

심의위원으로는 총 9명이 참여했고 위원장을 제외한 8명이 다수결로 산재 여부를 결정한다. 결과는 이르면 오는 9일 나올 예정이다. 가부동수가 나올 경우 2차 심의를 통해 산재 여부를 결정한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 심의받아
유족들 '가스라이팅' 심각성 전해
일부 위원들 '모호한 증거' 반박도


이날 공단 청사에서 만난 이찬희씨 배우자 A씨는 위원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많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A씨는 "일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며 "찬희씨가 일을 많이 한 것보다 직원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던 사내 분위기가 더 문제라는 걸 위원들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찬희씨를 떠올리던 그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유족 측이 공단에 제출한 자료는 찬희씨와 배우자 간 카카오톡 대화 기록과 동료들의 익명 진술 등이다. 회사 출퇴근 근무 기록이 아닌 정황 증거인 탓에 일부 위원은 과로사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아니라며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찬희씨 사례는 국내 대기업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산재 인정 여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찬희씨가 산재 인정을 받는다면 유사한 사례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통상 위원회는 명확한 증거가 있을 때만 산재를 인정해 왔다. 이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는 '체계'가 잘 잡혀있는 대기업의 경우 산재 인정이 어려웠다.

유족 측 대리인 법무법인 마중 김위정 변호사는 "다른 대기업에서 발생한 과로사 역시 소송까지 가서야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면서 "문제는 대기업은 체계가 갖춰져 있고 직원 관리가 잘된다는 이미지가 있어 산재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례가 산재 인정을 받는다면 유사 사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만약 산재 불승인이 나면 행정소송까지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족은 이날 현장을 찾은 찬희씨 동료로부터 그간 추모 집회 사진이 담긴 포토북을 전달받기도 했다. 세 차례 추모 집회를 벌여온 찬희씨 동료들은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면 단체 행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