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힘들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요즈음은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작성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부모 직업을 쓰게 되었던 시절 이야기다. 직업의 귀천이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대략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친구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생활기록부라는 곳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직업은 '노동'이었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고 성실하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오셨고, 아들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바랐던 자랑스러운 아버지셨다.
그런 내가 자라고 성장하면서 사회생활과 더불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떳떳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광주시인 광주군에서 현재의 9급인 5급 을류 공무원 시험에 합격, 공직에 입문한 이래 '공무원'이라는 직업으로 40년을 살아왔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 무조건은 아니지만 승진을 하며 팀장, 과장이라는 직위로도 살아왔다. 종합행정인 지방행정의 특성상 많은 부서를 이동하면서 ○○팀장, ○○과장의 직위도 있었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맑고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한 일을 담당할 때에는 수자원본부장, 명예퇴직 후 공공기관 근무할 당시는 경영관리본부장으로도 살아왔다. 공직을 오래하다 보니 ○○부시장, ○○부군수, 거기에다 시장 부재 시에는 시장권한대행이라는 호칭으로 살았고 퇴직 후에는 다소 어려운 점은 있으나 ○○문인협회 회장이라는 과분한 직위도 갖게 되었다.
문인협회 회장 과분한 직책과
퇴직후 삶까지 배려해준
천상의 아이에게 고마울 따름
아버지 직업을 뭐라 써야 할지를 두고 힘들어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니 왠지 가슴이 울컥해진다.
외길 공직 40년과 어린 시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표현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遺皮 人死遺名)'이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이다. 흔히 말하는 세상에서의 출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힘들고 고달픈 현실에서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심기일전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는 명심보감의 의미도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태어날 때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보다는 공직 내에서 붙여진 인위적 직위로 살아온 40년. 성공이라는 잣대로만 보면 성공한 삶일 수도 있지만 조직에서 부여된 업무 수행을 위한 꼭두각시의 삶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의 직위가 당시에는 활용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대변하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과거에 연연한 삶에 박수 칠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의 내 삶에 감사하는 마음. 과거의 사람보다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며 살아가는 게 현명한 삶이라는 걸 깨닫는 요즈음이다.
문학은 포스트 코로나 극복해 가는
현명한 선택임을 깨닫기도
문학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글'이라는 매개체로 천상대화를 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글 재주였지만 써 내려간 작품을 통해 등단과 함께 수필가로서 문학인의 삶을 살고 있다. 문인협회 회장이라는 과분한 직책과 함께 퇴직 후의 삶까지 배려해 준 천상의 아이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비대면을 요구받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해 나가는 현명한 선택지 중의 하나임을 깨닫기도 한다.
'종이와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가능한 게' 바로 문학이라는 한 문학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부시장, 부군수 등 과거 직위가 지금의 삶을 좌우하지 않는다.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문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과 정서 함양에 매진하고 있는 문협 회원 90여명이 가장 소중한 분들임을 간파하면서 말이다.
/김한섭 광주문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