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상 영웅 김동성은 1998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천m 우승자다. 강력한 우승 후보 중국 리자쥔(李佳軍)과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다 결승선 날 들이밀기 신공으로 신승했다. 불과 0.053초 차이로 승부가 갈렸고, 리자쥔은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심판에게 수차 확인을 하고서야 경기장을 떠났다.
2002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천500m 유력한 금메달 후보는 이 종목 세계 1위 김동성이었다. 결승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 리자쥔 등과 경쟁한 김동성은 여유 있게 1위로 통과했으나 어이없게 실격 처리됐다. 레이스 도중 오노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거다. 유명한 '할리우드 액션' 사건이다.
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1천500m 결승에서 김동성은 초반부터 치고 나가 2위 그룹을 한 바퀴 반 이상 따돌리는 압도적 기량으로 우승했다. 2분21초72 기록으로 2위 선수에 10초 이상 앞섰는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대담한 전략이었다. 상대 선수가 반칙하거나 편파판정 요인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로, '분노의 질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비록 오노와 숙적 리자쥔이 출전하지는 않았으나 월등한 기량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작전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남자 쇼트트랙 1천500m 황대헌이다. 10명이 출전한 결승에서 황 선수는 9바퀴를 남겨두고 선두로 치고 나와 레이스를 주도했다. 후반 들어 속도를 더 높였고, 단 한 차례 역전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황 선수는 "아무도 제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준비한 전략이 통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틀 전 1천m에서 뼈아픈 오판으로 실격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중국 매체들도 "논쟁 없이 진짜 실력을 발휘했다"는 반응을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존중(respect)을 받았다. 올림픽은 이래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반칙왕 리자쥔은 스케이트 날을 고의로 뻗어 김동성을 다치게 했으나 우승을 막지 못했다. '나쁜 손' 런쯔웨이(任子威)는 교묘한 손기술과 심판 도움으로 1천m 금메달을 강탈했으나, 1천500m에선 실격했다. 황대헌은 베이징에서 20년 만에 '분노의 질주'를 재현했다. 반칙은 원칙을, 편법은 정도를 이길 수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