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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들은 대체로 수학·과학 과목을 싫어한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의사나 엔지니어의 길을 접었다는 학생이 많다. 반면 국어·외국어와 역사·지리가 부담인 학생들은 장래 희망과는 거리가 먼 이과를 선택한다. 수십 년 이어진 계열별 분리 학습의 폐해가 심각하다.

교육부가 2015년 '문·이과 통합형 개정 교육과정'을 내놨다. 미래 정보지능사회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2018년부터 문·이과의 칸막이를 허물어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수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행 4년이 지났으나 교육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 인문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문과 공부만 하고, 이공계열 지원자는 이과 공부만 하는 칸막이 학습이 여전하다. 정부 바람과 달리 문·이과의 벽은 견고했다는 게 교육계 목소리다.

2022학년도 서울대 인문·사회 정시합격 44%가 이과생이라고 한다. 최초 합격자 486명의 수능 수학영역 선택과목을 분석한 결과다. 이과생들 영역인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이 216명(44.4%)에 달했다. 심리학과는 9명 중 8명이 이과생이었다. 자유전공학부 95%, 경제학부 44%, 경영대 43%, 영어교육과 63%를 점령했다.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은 지난해 처음 도입된 '문·이과 통합 수능' 영향이다. 수학은 과거 이과생은 '수학 가형', 문과생은 '수학 나형'을 치렀고 성적을 분리 산출했다. 그런데 이번 수능부터 문·이과생이 시험도 같이 보고 성적도 함께 산출했다. 입시업체들은 1등급 90% 가까이가 이과생인 것으로 본다.

서울 주요 대학은 자연계열 지원생의 경우 수학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는 과학탐구 중에서만 고르도록 해 문과생의 이과계열 지원을 막았다. 교차 지원하는 이과생에는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이과생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문과생들은 '이번 생 폭망했다'고 절규한다.

문과에 지원한 이과생들은 수준이 2단계 높은 대학에도 합격했다. 수도권 대학에서 인 서울로, 지방대에서 수도권으로 합승한 이과생들이 많다. 눈치 빠른 입시학원은 교차지원에 따른 맞춤형 대입 전략을 홍보하며 재수를 권한다. 문과 지원을 위한 이과생들의 재수, 반수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미래세대 인생이 달린 대입제도가 이렇게 허술할 수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