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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체제의 첫 대통령 선거였던 13대 대선 유세는 인해전술이었다.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YS), 평화민주당 김대중(DJ),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는 지지세를 과시하려 장외집회에 군중 동원령을 내렸다. 노 후보와 양 김 후보는 여의도 광장에 모인 100만 인파 앞에서 사자후를 토했다. 인파 중 상당수는 일당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었고, 이를 노리고 모인 잡상인들이 벌인 술판이 즐비했다. 전국 대도시의 공설운동장, 해변 공터 등 유세장마다 같은 난장판이 벌어졌다. 장외집회의 규모가 여론조사를 대신하던 시절의 풍경이었다.

대규모 장외집회는 영원한 숙적 YS와 DJ가 정면 충돌한 14대 대선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여론조사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지역, 세대, 직능, 성별 지지도를 한눈에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지층을 결속하고 부동층을 공략하는 미디어 선거전이 본격화됐다.

대중이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인터넷 기술 발전도 유세의 양상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정동영 후보의 유세 장면은 전국 곳곳에 배치된 선거유세 차량의 LCD 화면을 통해 동시에 중계됐다. 휴대전화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쌍방향 캠페인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20대 대선이 첨단기술의 경연장이 됐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선대위 출범식에서 'AI윤석열'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윤석열 후보의 딥페이크 분신인 'AI윤석열'은 온라인에서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며 "오늘도 에너지 넘치게 파이팅"을 외치며 주인에게 봉사 중이다. 'AI윤석열'을 유권자 기만행위라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도 최근 'AI이재명'을 등판시켰다.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는 청년층 공략 거점이 되고 있다. MZ세대가 모이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선거사무소를 개설하는 식이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현실과 똑같은 선거운동이 가능하자, 선관위엔 메타버스 불법 선거운동과 관련된 문의가 쇄도한다는 소식이다. 선관위도 메타버스에 직원 아바타를 상주시켜야 할 판이다.

AI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고, 메타버스가 현실세계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면 투표마저 가상공간에서 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대통령선거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