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인천컨테이너터미널(이하 ICT)에서 노동자 A(42)씨가 트레일러에 치여 숨진 사고(2월17일자 6면 보도=민주노총 "노동당국 'ICT 사망사고' 엄정 법 집행을")에 대해 노동당국이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 배경에는 항만사업장의 복잡한 근로계약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이번 사고가 법률상 도로가 아닌 산업현장인 ICT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만큼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조사에 나섰다. 조사과정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위반사항(보행자 안전 통로 미확보 등)을 확인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ICT 일부 구역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PSA 안전조치 의무위반 했지만
노동당국, 원청업체만 대상 조사
현재 ICT는 싱가포르의 세계적 항만 운영사 PSA가 세운 인천컨테이너터미널(주)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국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을 ICT 운영사가 아닌, B해운으로 보고 안전보건조치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숨진 A씨는 고박업체 소속인데 이 업체의 원청이 B해운이기 때문이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은 ICT 운영사인 PSA가 했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에 대해선 B해운을 두고 판단하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당국은 B해운이 ICT 현장에 사무실을 두지 않았고 관리자도 없어,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한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항만사업장은 항만운영사가 선사·화주 등과 계약해 노동자들이 화물을 하역하는 곳이지만, 하역 업무 노동자 이외에도 고박업, 화물차주 등 다양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항만운영사는 소속 노동자에 대해서만 안전보건조치를 하게 돼 있다.
ICT는 B해운과 업무 계약관계가 있지만, 숨진 A씨와는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 이처럼 복잡한 근로계약 구조로 인해 A씨와 같이 항만운영사 소속이 아닌 노동자들은 항만운영사가 마련한 안전보건조치 테두리 밖에서 일해야 하는 실정이다.
사무실·관리자도 없어 적용 한계
8월 특별법까지 철저한 점검 필요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는 지난해 7월 '항만사업장 특별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항만노동자의 안전보건조치를 책임질 수 없는 지금의 계약구조에서 벗어나 항만운영사가 선사, 항만연관산업 업체 등과 일괄계약하는 '원스톱(One Stop) 서비스' 시행이 포함됐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해외 주요 항만에서는 이 같은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이 대책은 올해 8월 시행되는 '항만안전특별법'에 들어갈 전망이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소속 인천지역 중대재해대응사업단 박선유 운영팀장은 "특별법이 시행될 때까지 앞으로 6개월 동안은 현행법(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항만 안전을 관리해야 한다. 이 기간에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등 노동 당국이 현장 점검을 꼼꼼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해수부 등은 항만 안전 대책을 항만안전특별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담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