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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 가운데 하나다. 그중에서도 수치심은 정의를 실현하는 기둥이다. 사회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자기 반성력이 사라지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려 파멸을 면치 못한다. 수치심이라 불리는 염치가 사라지면 파렴치(破廉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파렴치한 사회라면 거기서 무슨 일이 가능하겠는가'('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중에서).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책 중 부끄러움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떻게 하면 선택의 순간에 더 본질적인 것을 고르게 되는가' 자문한 뒤, '염치를 알면 된다. 최소한 부끄러워할 줄만 알아도 한층 더 높이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자 자공이 '학문을 닦고 인격을 도야하는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行己有恥)이라고 답한 대목을 예시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6일 자진 사퇴했다. 4년 임기를 1년 4개월 남기고서다. 김 회장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며 국회에서 운영해온 카페 수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건과 관련,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그는 "최근 사태에 대해 부끄럽고 민망하다"며 "회원 여러분의 자존심과 광복회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것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김 회장 재임 중 광복회는 유례없이 시끄러웠다.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정부 탄생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진영 간 논쟁을 불렀다. "나라가 두 동강 나게 생겼다"는 비판에도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박근혜보다 김정은이 낫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을 친일로 규정하면서 파묘론을 들먹였다. 친여 인사들에게는 '독립군 대상',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정직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카페 수익금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무허가 업소에서 전신 마사지를 받고 한복과 양복을 사 입었다. 감사에 나선 국가보훈처는 김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7천만원을 넘는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광복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도 뒤끝마저 깔끔하지 않다. '사람을 볼 줄 몰랐고 감독·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이라고 남 탓을 했다. 사람 구실을 하는 기본 도리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했는데, 이게 어려운 모양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