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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근대 건축 연구자인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건축가의 엽서-네모 속 시간여행'(글누림)에는 그가 수집한 오래된 그림엽서 속 근대도시 인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양식·일본식 건축물이 늘어선 잘 정비된 제물포 개항장 거리는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던 인천'이라고도 표현한다.

이 책에서 손 교수가 흥미로운 추론과 검증 과정을 밝힌 각국 조계지 쓰레기소각장을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각국 조계는 제물포 개항장에서 서양인들이 모여 산 구역이다. 손 교수는 송월동 1가 풍경을 촬영한 그림엽서(1914년 이전 추정)를 분석하다 솟을 지붕과 높은 굴뚝이 있는 건물들에 주목했다. 1930년 인천부 전화번호부, 지적도, 옛 신문기사, 각국 조계지 회의록 등 각종 자료를 파헤친 끝에 이 건물들이 각국 조계지 쓰레기소각장일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 조계의 쓰레기소각장이 도원동에 있었다는 기록도 확인했다. 청국(중국) 조계 쓰레기소각장의 흔적은 발견하진 못했지만, 분명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에서 일한 청소부가 치운 쓰레기를 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림엽서 속 쓰레기소각장은 조계지 밖 조선인 거주지에 있었다. 일본 조계의 도원동 소각장 또한 조선인 거주지다. 이들 소각장은 인천부가 1920년 쓰레기소각장을 신축하면서 폐쇄된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 만들어진 소각장은 아예 인천부 밖으로 밀려났다. 당시 인천부 행정구역은 현 중구·동구지역으로 협소했다. 인천부의 새 소각장은 과거 부천군에 속했던 현 미추홀구 어디쯤이었을 것 같다.

외국인들이 사는 근대도시 필수 기반시설인 소각장이 그들의 경계를 넘어 조선인 거주지에 있었다는 건 모던 인천의 숨은 이야기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도 도시의 쓰레기매립지, 소각장이 도심 경계 밖으로 밀려나 있는 건 마찬가지다. 수도권 외곽엔 여의도 면적(2.9㎢)의 약 5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 광역 폐기물 매립지인 수도권쓰레기매립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박경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