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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적폐청산인가 정치보복인가를 둘러싸고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간에, 그리고 여야간에 격렬한 공방이 일었다.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윤 후보는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 관여 안 하는 시스템에 따른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분노를 표명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여당은 정치보복을 예고했다고 비판했고, 야당은 원칙론적 표명에 명백한 선거개입이라고 반박하는 등 여야간에 확전이 거듭되는 듯싶더니 점차 잠잠해졌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1달 남기고 양 진영이 벌인 지지자 결속용 선거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거나 내로남불식 전략의 한계였다는 등으로 해석되고 말 일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자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한 상호관용과 제도적 권력행사의 자제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또한 이러한 정신과 태도가 사회구성원들에게 규범으로 내면화되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심지어 적대 세력간에 평화적 공존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른 세력에 대한 상호관용이 부재할 경우에는 선거가 아닌 내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설사 내전에 이르지 않더라도 이른바 '적폐청산'과 같은 정치보복이나 극단적인 진영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적 상대를 민주주의 체제의 구성원이 아닌 배제되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가장 심각한 국가기구 파괴는
'검찰개혁' 미명 그나마 남아있던
법 수호세력 검찰마저 종속시킨 일


그렇다면, 정치세력이나 사회세력의 불법적인 행위조차 무조건 관용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를 바로잡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요소는 이른바 '법의 지배'이다. 법 자체가 경기의 규칙이고 그 법의 지배는 규칙을 어기는 구성원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제도적 자제력을 상실하고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에 따라 최대주의적 법률해석에 의거해 권력을 남용하고, 그로 인해 다른 구성원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상호 관용에 의거하여 제도적 자제력을 발휘할 때에 법의 지배를 무너트리지도 정치보복으로 나아가지도 않게 된다.

대한민국의 최근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권력남용이 극심하였고 이에 대한 사후적 법의 적용은 정치보복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뀐 후에는 항상 '법의 지배'를 적용하는 일련의 과거 청산적 정치과정이 존재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의 정권들은 상호관용 정신을 잊고 적폐청산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고, 이후에는 스스로 자제력을 잃고 또다시 권력남용을 행하기 일쑤였다. 일련의 사법적 과거 청산은 불법적 권력남용과 그로 인한 인권침해 등에 대한 정상화 및 사후 복원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권력남용의 가해자들은 정치보복으로 항변하기 마련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자신을 정치보복의 피해자로 둔갑시키곤 했다. 결국 정치권력의 불법적 남용, 다시 말하면 상호관용과 제도적 권력 자제의 부재가 이후의 정치과정에서 자제되는 순기능적 자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늘 정치적 쟁론의 주제로 떠오르거나 정치보복을 다짐하고 당연시하는 역기능적 폭발로 이어졌다.

정치보복, 민주주의 무너트리지만
'법의 지배'까지 버릴 일은 아니다


특히 심각한 사실은 민주주의 존속에 필요한 국가적 기능들, 즉 정치적 경쟁의 심판자들을 특정 정파에 종속시키는 민주주의 자체의 파괴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사법부, 감사원,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 등 헌법상 독립기구이자 정치의 심판관들을 특정 정치세력에 예속시킴으로써 집권세력의 권력남용을 심판하고 제재할 국가기구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가장 심각한 국가기구 파괴는 이른바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그나마 남아있던 '법의 지배' 수호세력인 검찰마저 종속시킨 일이다. 현 집권세력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권력남용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심판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예방조치였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 정화기구들을 다시 복원시킬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정치보복은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적이지만, 그렇다고 '법의 지배'까지 버릴 일은 아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