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러 들어갈 때 무엇이 있는지 바로 맞추는 게 성(聖), 남보다 앞장서 들어가는 게 용(勇),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타격이 적은 곳을 터는 것이 지(智), 훔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인(仁)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설적 도적인 도척(盜척)이 했다는 말이다. 비록 남의 물건을 훔치고, 약탈하는 죄인이나 나름의 지켜야 할 도(道)가 있다는 것이다.
도척은 노나라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아우로, 태산에 본거지를 두고 도적질을 일삼았다. 부하 9천명을 휘하에 두고 제후를 공격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유하혜 친구인 공자(孔子)가 악행을 막겠다며 그를 찾아갔으나 외려 혼비백산 쫓겨나고 말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문밖을 나서 마차를 타려다 3번이나 고삐를 놓칠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 밖에서 마주친 유하혜가 "그놈이 혹시 선생의 뜻을 거스르지나 않았느냐"고 묻자 "사실이 그대로였다. 갑자기 달려가 호랑이의 수염을 따려 들었다가 하마터면 물려 죽을 뻔했다"고 했다. 장자(莊子)는 이 일화를 지어내 현실에만 매달리는 공자를 비판했다. 도척은 노나라 사람이나 공자보다 100여 년 앞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도 조세형(83)이 절도혐의로 또 구속됐다. 60대 공범과 함께 용인시 양지면 고급 전원주택단지를 돌며 3차례 3천300만원 상당 금품을 훔친 혐의다. CCTV를 통해 용의자가 특정됐고, 먼저 붙잡힌 공범 진술로 서울 자택에서 체포됐다. 2019년 서울 광진구 주택가에서 1천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2년6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2개월 만이다.
조씨는 1970~80년대 담장 높은 서울 부촌만 골라 털었다. 재판 중 '외국인과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거나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쓴다'고 해 대도에, 의적(義賊)이라 불렸다. 5공 실세 부인 소유의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그의 손을 타 장물이 됐다. 당시 피해자 여럿이 부정축재를 감추려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때 드라마에도 소개됐던 한국판 '괴도 뤼팽'은 상습도벽에 갇힌 잡범에 불과했다. 종교에 귀의한 뒤에도 담벼락을 넘나들었다. 세 살 버릇 못 버리고 80 중반에 다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