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하역 DB
인천항에서 시행 중인 항만 안전 매뉴얼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언제든 사고에 노출될 수 있다는 현직 항만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사진은 인천항에서 하역작업 중인 노동자들 모습. /경인일보 DB

"항만 안전 매뉴얼이요? 노동자들이 지키려야 지킬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인천항에서 15년째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장훈(가명)씨는 최근 인천컨테이너터미널(이하 ICT)에서 항만 노동자가 트레일러에서 치여 숨진 사고(2월17일자 6면 보도=민주노총 "노동당국 'ICT 사망사고' 엄정 법 집행을")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정씨는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야간에 낡은 선박에서 작업할 때는 주위가 어두워서 위험한 경우가 많다"며 "안전관리자에게 조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작업 환경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가 말한 항만 안전 매뉴얼로는 IPA가 만든 180페이지 분량의 '인천 하역안전 매뉴얼'과 해양수산부가 전국 항만에 배포한 15분짜리 '항만안전교육' 영상 등이 있다. 여기에는 안전장비 착용, 야간작업 시 철저한 점검과 충분한 조명 설치 등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안전수칙 등이 자세히 담겨있다.

정씨는 "항만 운영사의 협력 업체 소속인 일용직 노동자 중에는 안전모 등 안전장비조차도 직접 사서 쓰기도 한다"며 작업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제보했다.

하역노동자들 열악한 현장 '푸념'
"야간 작업 어두워서 위험한데…"


인천항 노동자들은 해양수산부 등 당국이 내놓은 항만 안전 매뉴얼이 유명무실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작 항만 안전 매뉴얼을 노동자들에게 배포한 당국이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인천항의 또 다른 노동자 이용재(가명)씨는 "매뉴얼에 나와 있는 항만 내 중장비 운행 속도는 10~30㎞/h"라면서 "대부분 작업장에는 과속감시카메라 등 통제장치가 없어 강제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은 장비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안전관리자 등에게 보고하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고 푸념했다.

IPA 180쪽 분량 배포 '관리 소홀'
안전모 등 보호장비조차 직접 구매


지난 12일 ICT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현장도 안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ICT 등 중장비 이동이 많은 항만에서 노동자가 이동할 때에는 차량 이용이 원칙이다. 만약 작업장에서 차량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안전 통로(보행로)로 다녀야 한다.

그러나 ICT에는 항만 노동자들이 대기 장소에서 작업 구역까지 가는 데 어떠한 안전 통로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매뉴얼만 지켜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인재였던 셈이다.

항만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해양수산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를 강제할 만한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궁색한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인 항만 운영자에게 안전보건조치를 강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며 "오는 8월 '항만안전특별법'이 시행되면 그 근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만마다 과속감시카메라를 지원하는 등 항만안전특별법 시행 전까지 안전보건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