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701000974400050581

현대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이 26일 타계했다. 약관의 나이에 문학평론가로 사회에 참여한 그가 작가, 언론인, 교수, 행정가로 종횡무진하면서 남긴 정신적 족적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어령은 우상파괴자(iconoclast)로 문단에 등장했다. 김동리를 비롯해 당시 문단을 장악한 기성 작가들을 구시대의 우상이라 비판하고 우상 파괴를 주장했다. '분지' 필화사건은 문학과 사상의 자유를 겁박하는 군사정권에 홀로 맞선 명장면을 남겼다. 작가 남정현의 단편소설 '분지'가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이어령은 법정에서 "장미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지 사람에게 담배 파이프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작가를 두둔했다.

이어령의 진가는 시대정신을 명명하고 다가올 시대를 예지하는 인문학적 통찰력에 있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엮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년)'로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적을 '신바람 문화'로 규정했다. 그가 작명한 서울 올림픽의 구호 '벽을 넘어서'는 냉전 이후의 세계와 한국의 도약을 예견했다.

이어령은 한국인에게 각인된 창조 DNA를 끊임없이 일깨웠다. "날 것도 익힌 것도 아닌 그 중간 항(項), 자연과 문명을 서로 조합하려는 시스템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 비빔밥"이라는 비빔밥 예찬론과 같이 직관적인 비유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양시켰다. 디지털 공동체와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 시대의 주역도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 창조적 미래세대 육성을 위해 '창조학교' 설립 운동을 펼쳤다. 실제로 경기도에 창조학교 설립을 제안해, 안산시 선감도에 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다.

언론사는 해마다 신년 즈음이면 그를 찾아 시대의 좌표를 물었다. 미수(米壽·88세)를 누렸으니 애석하다 할 수 없건만, 나라가 어렵고 국민이 힘들 때마다 희망을 주었던 그의 지혜가 함께 유실된 건 큰 손실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은 남았다. 이어령의 마지막 지혜를 기록한 출판물도 쏟아질 것이다. 시대가 곤란하고 대중이 힘겨울 때마다 이어령은 끊임없이 소환될테니, 앞으로도 오래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이어령은 스스로 유산이 되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