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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야닉 네제세갱이 이끄는 빈필과 협연하는 조성진(사진작가 Chris Lee). 2022.2.25 /카네기홀 제공

행운의 여신은 앞머리가 무성하고 뒷머리가 없다. 지나가 버렸을 때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는 행운의 속성을 뜻한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이다. 이러한 기회를 잡는 것은 준비된 자들의 몫임이 분명하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5일 뉴욕 카네기 홀에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 조성진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기다려왔던 빈필 데뷔 무대는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성사됐다. 이날 공연은 당초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의 협연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지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당시 지지성명을 냈던 사실이 문제가 됐다. 또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러시아 연주자들의 출연이 줄 취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 푸틴'인 이들은 공연에서 배제됐다.

우크라 침공 '친 푸틴' 연주자들 제외
공연 전날 연락받아 '리허설' 시간 촉박


지휘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야닉 네제 세겡이 맡았다. 조성진은 공연 전날 자정 무렵 연락을 받고 곧바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마지막으로 연주한 지 3년이 됐고, 빈필과의 협연도 처음이었다. 서로 맞춰볼 리허설 시간도 촉박했다.

부담은 연주자의 몫. 결과만 보더라도 조성진은 훌륭하게 공연을 마쳤고, 그에 대해 미국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조성진의 연주에 대해 단순히 공연을 무사히 해낸 것에 그치지 않고 절묘하고 섬세했다며 '기적 같은 연주 솜씨'를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특히 3년 만에 처음 연주하는 곡을 전날 의뢰받아 암보로 연주한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또 감정과 기교를 쏟아 붓는 것이 아닌, 흐르듯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급박하게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준비된 실력의 연주자로서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 셈이다.

기교 아닌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암보'
뉴욕타임스 "기적같은 솜씨 보여" 호평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성진의 베를린필하모닉 데뷔 무대도 부상으로 연주를 취소한 피아니스트 랑랑을 대신해 이루어졌다. 2017년 베를린에서 조성진은 베를린필과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많은 클래식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독일에서도 '서정적이고 섬세한 피아니즘'으로 호평받으며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렸고, 지휘를 맡았던 사이먼 래틀은 내한공연 기자회견에서 "젊고 위대한 건반의 시인과 연주하게 된 것에 기쁘고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