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지어야 하고 설거지해야 하는 우리 엄마들. '밥돌밥돌'이란 미로에 갇혀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엄마 모습이 딸아이 눈엔 그렇게 비쳤나보다. 21세기에도 대한민국 엄마는 여전히 '부엌데기'였다.
정부는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 대책으로 380조2천억원이란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부었다. 그랬음에도 합계출산율(2021년)은 되레 0.81까지 추락해 세계 꼴찌다. "응애~ 응애~"는 과거에나 존재했던 의성어가 되면서, 가장 아름다운 한글 '엄마'는 차츰 사어(死語)가 돼가고 있다. 비상벨이 오래 전 울렸음에도 정부 전략은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이고, 전술은 비틀비틀 서툴기 짝이 없다. 출산 정책 실패는 그 자체로 국가적 대재앙이다.
'저출산' 한국경제 실질적 악영향은
'40년 후'라 국민들 당장 체감 못해
저출산 문제는 남성과도 관련성이 깊다. 아이를 가지면 성심성의껏 도와주겠다던 남편이 출산 이후엔 슬며시 손을 놔버린다. 결국 아내가 육아 대부분을 책임지는 '독박 육아'가 시작된다. 맞벌이임에도 퇴근 후 남편은 소파에 기대 TV와 스마트폰에 몰두하지만, 아내는 뚝딱 저녁상을 차려내야 한다.(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오늘날 여성은 학력도 높아졌고 사회활동이 늘면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하나 남성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그리 변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양육 불공정을 바로잡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고, 그 아래 세대는 머리론 인식하지만 행동으로까진 탈피하지 못해 여전히 괴리가 있다. 마침내 여성들은 출산·육아와 내 삶과의 동행이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안타깝게도 다들 간과하는 게 있다. 저출산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까지의 '시간적 차이'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자라 직업을 갖는 시기는 빨라야 오는 2042년쯤이다. 사회 노동력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그 이전에 태어난 이들로 채워진 상황이라 거시경제에 큰 변화는 없다.
정작 저출산이 경제 성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그보다 20년 정도 더 흐른 시점(2062년)이다. 즉, 저출산이 한국 경제에 실질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건 지금으로부터 40년 후 시점이다. 미래 생존을 좌우할 핵심 사안이 저출산임에도 국민들 반응이 시큰둥한 데는 '시차'로 인해 당장 악영향을 체감할 수 없는 탓이다.
더해 일시적이긴 하나 저출산으로 부양해야 할 인구가 줄면서 경제성장에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와 위기감은 잠시 수면 아래에 머문다. 그러다보니 숲은 안 보고 나무만 보면서 나라가 사라진다는데도 떨떠름한 표정뿐. 이러는 동안 경제를 정치로 아는 꾼들에게 정책이 휘둘려 판돈(지원액)이 늘면서, 공(公)돈은 공(空)돈이 돼 급기야 공(恐)돈으로 돌아올 공산이 커졌다.
3세대 90년간 인구 지금의 15분의 1
급감 지속될땐 생산성 향상 만으로
국내 산업·경제 뒷받침 절대 역부족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단순계산을 해봤다. 합계출산율 0.81은 남녀 2명 사이에서 자녀 0.81명이 태어났다는 걸 뜻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나이 차이가 대략 30세 정도라면, 30년 후의 자녀 인구는 부모세대의 약 40%밖에 안 된다. 3세대, 90년 동안 이런 참담한 일이 지속되면 0.40×0.40×0.40=0.064, 즉 인구는 지금의 15분의 1이란 경천동지할 수치다. 이 정도로 급격한 감소 추세가 지속되면, 기술 진보나 생산성 향상만으로 국내 산업과 경제를 뒷받침하기엔 절대 역부족이다.
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윌 듀란트는 인류 역사의 생물학적 교훈으로 경쟁과 선택, 번식 등 세 가지를 꼽았다. 특히 "역사의 세 번째 생물학적 교훈은 생명은 번식해야 한다"(The third biological lesson of history is that life must breed) 라는 도발적 경구를 남겼다. '번식'이란 거친 단어가 뇌리에 꽂히며 갖은 잡념이 교차되는 요즘이다. 제발 아이 좀 낳아라. 아니 낳게 좀 해줘라.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