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이 민주화 제단에 피를 흘린 덕분에 87체제가 시작됐다. 국민은 87 개헌 첫 직선제 대통령이 민주화 진영에서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해 12월 9일 13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유권자의 89.2%가 투표에 참여했다. 민정당 노태우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YS)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DJ) 27.04%,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8.10% 순으로 득표했다. 5·18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민주화 운동의 열매인 87체제 첫 직선 대통령이 됐다.
민주화 운동의 두 별인 YS와 DJ가 단일화했다면 질 수 없었던 선거 결과에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들은 땅을 쳤다. 선거전에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 사람은 선거를 겨냥해 어용 야당인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공동으로 창당했다. 그런데 대권, 당권 분할 협상의 이견으로 골이 깊어졌다. DJ는 동교동계를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또 한 번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4자 필승론을 주장했다. 민주화 진영의 명망가들이 끝까지 단일화를 촉구했지만 두 사람은 듣지 않았다.
결국 YS는 호랑이를 잡으러 간다며 3당 합당으로 정치 진로를 틀어 14대 대통령이 됐다. 그는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명명했다. 민주진영의 분열로 탄생한 노태우 정부를 민간정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5대 대통령이 된 DJ는 자신의 정부를 '김대중 정부'라 했다. YS가 선취한 '문민'을 부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일 테다. 양김(兩金)의 분열로 민주진영은 87체제 첫 민주정부를 열어젖힐 영광을 잃어버린 셈이다. 역사는 의외의 사건으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게 마련이다.
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정부로 규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YS가 노태우 정부 하나를 건너뛰어 '문민'을 자부했다면, 문 대통령은 노태우, YS 두 정권을 뛰어넘어 김대중 정부에 민주의 정통성을 부여했다.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똑같은 민주 선거로 선출된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반론과 대통령에게 그럴 권한과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정치 연고를 감안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인지 의문이다. 대선 정국 아닌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