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1.jpg
7일 오전 현대차 남양연구소 내 게시판에 이찬희 책임연구원 사망과 관련, 사측의 추가 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게재됐다. 2022.3.7 /독자 제공

현대차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업무상 과로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찬희 책임연구원의 사망에 대해 '업무와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이 연구원이 과로나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봤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남양연구소위원회 측은 "사측 추가 조사를 요구한다"며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6일 위원회, 유족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위원회는 '남양연구소 조직문화 개선위원회 진상 조사 및 조직문화개선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이 연구원 동료를 상대로 한 설문, 컴퓨터 포렌식 등 위원회가 한 달여간 진행한 조사 결과가 담겼다.

위원회는 회사 근무 기록에 집계되지 않은 이 연구원의 야간, 새벽, 주말 근무 사실 등을 확인했다.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근무 기록만을 토대로 이 연구원 유족이 신청한 유족급여 지급 청구를 불승인(2월8일 인터넷 보도=현대차 이찬희씨 '산재 불승인'… "시대적 요구 역행하는 근로복지공단") 한 것과 달리 배우자와의 메시지, 메모 등을 분석한 결과라는 게 위원회 측 설명이다.

또 상사가 이 연구원에게 "네가 디자이너냐? 창문 밖으로 밀어버릴까?" 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점, 남양연구소 내 32개 센터 중 이 연구원이 속했던 디자인센터 조직 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부정 평가가 가장 많았다는 점 등이 드러났다.

111.jpg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 앞에서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죽음으로 내몰린 고 이찬희 씨를 추모하고 있다. 2022.1.18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다만 보고서에는 '결국 개선위원회도 질판위 판단을 뒤집을 정도 판단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의견이 명시됐다. 위원회는 직장 내 괴롭힘 등과 질병, 사망 간 연관성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봤다.

이를 접한 이 연구원 동료들은 반발하고 있다. 동료 A씨는 "질판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뒤 위원회 조사를 해보니 문제가 많았다. 유가족에게 유리할 수 있는 기록이긴 하지만, 보고서에 공개된 내용은 '법적 책임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지겠다'는 뉘앙스로 다분히 의도적이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익명 블라인드 앱에는 '조직문화 개선위원회 결과 떴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코로나 특별 격려금) 400(만원) 주고 불만 좀 잠재운 다음에 바로 저런 식으로 발표한다' '쟁점인 괴롭힘 관련 된 건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게 어이없네' '피해자가 돌아가신 상황이고 가해자만 남았는데 가해자가 구두로 폭행한 걸 가해자가 숨기면 어떻게 증명함?'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550.jpg
7일 오전 현대차 남양연구소 내 게시판에 이찬희 책임연구원 사망과 관련, 사측의 추가 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게재됐다. 2022.3.7 /독자 제공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남양연구소위원회도 지난 5일 사측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오승탁 의장은 "상당 시간이 지난 후 조사가 이뤄졌음에도 무리한 결론으로 회사에 면책을 주고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과 직장 문화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대상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 권고로 면책을 주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족 측도 "지금껏 사과 한 마디 없던 회사에서 점검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반문했다. 이 연구원 배우자 B씨는 "처음부터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1년 반 동안 혼자서 싸워왔다. 이제야 회사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듯 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은 현대차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개선위 조사 결과를 철저히 이행하겠단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측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고 위원회는 "국가 기관인 질판위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유족 측에서 이번 조사 결과를 향후 소송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