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을 언어적 존재라고 하는데 뇌과학적으로 봐도 그렇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좌뇌 측두엽의 브로카(Broca)와 베르니케(Wernicke) 영역에서 관장한다. 브로카 영역에 장애가 생긴다면 언어 이해 능력은 살아있지만 말을 정연하게 구사하지 못하게 되고, 베르니케 영역에 장애가 생겨난다면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상황과 맥락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실어증 환자나 언어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몇 가지 간단한 시험을 하면 어느 영역에 문제가 있는지 금방 간파할 수 있다.
또 언어능력은 젠더, 즉 성차(性差)도 있다. 여성들은 우뇌에도 언어를 관장하는 중추가 발달돼 있어 평균적으로 남성들보다 우월한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말에 민감하고 구조적으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 언어 특히 허구 생산력 탁월
제도·시스템 고안 지구 지배 슈퍼 생명체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 따르면, 동부아프리카에서 생물학적 기적으로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같은 여섯 종이 넘는 다른 인류종들을 누르고 지배종이 된 비결은 근육의 힘이 아니라 언어 특히, 허구를 생산해내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공의 질서인 신용 같은 허구를 고안해내는 상상력으로 효율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내 결국 지구를 지배하는 슈퍼 생명체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슈퍼 생명체의 새로운 무기가 바로 카카오톡·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 등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들이다. 아낙네들이 잡담하며 소소한 정보를 교환했던 빨래터나 우물가들이 없어지고 마실 문화도 사라져버린 지금, 그 빈자리를 메워 준 것이 SNS라는 디지털 빨래터, 우물가다.
사실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게 잡담과 수다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남성들은 과묵해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평상시에 억눌러 놨다가 일거에 수다의 욕구를 분출, 합법적으로 해소하는 통로가 있으니 그게 바로 술자리다. 남자들의 수다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술자리다. 그러고 보면 근대 초기 유럽의 커피하우스나 펍 그리고 우리 왕대포집들은 남성들의 우물가요, 여론 형성의 공론장이었던 셈이다.
정서적 소통 목마른 현대인 수다 창구 SNS
'말·글이 곧 그 사람' 톡도 품격·매너 있어야
코로나19의 대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만남이 제약을 받는 요즘, 그리고 정서적 소통에 목마른 현대인들의 수다 창구요 유력한 소통 수단이 '카톡'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다. 업무나 일상적인 일처리로 시간이 없어 몇 시간만 확인하지 못해도 어느새 수십 개의 메시지들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 시간에 또는 무료한 시간에 이런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서로 안부도 묻고 정보도 교환하고 때로는 삶의 큰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망을 이용하다 보면 상대방의 취향과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 사람의 인품과 수준도 드러난다. 과연 '말과 글이 곧 그 사람(文者人也)'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다. 한동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요즘에 얻은 잠정적인 결론은 내가 '누구라거나 누구로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하수의 답변이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는 지금 내가 무슨 생각,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들이 바로 주체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말에도 품격과 예절이 있듯 카톡과 SNS도 예절과 품격이 있다. 수다와 소통도 좋지만 톡(talk)에도 품격과 매너가 있어야 한다. 톡도 인품의 표현이며 인격 그 자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