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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일 발생해 다음해 2월까지 다섯 달 넘게 이어진 호주 산불은 역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겼다. 호주 남동부 해변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면적의 85%이자 호주 전체 숲 면적의 14%인 1천860만㏊의 삼림이 잿더미가 됐다. 산불연기가 이웃인 뉴질랜드를 넘어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과 도쿄만까지 번졌다. 소방대원 10명 등 28명이 사망한 인명 피해도 안타깝지만, 계산 방식에 따라 5억에서 12억 마리로 추산되는 동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에 그슬린 채 구조된 코알라들의 처참한 영상들이 심금을 울렸다. 불은 결국 큰 비가 오고 나서야 잡혔다.

이상기후 현상인 폭염이 지구촌 곳곳을 화염산으로 만들고 있다. 폭염으로 건조된 숲은 작은 불쏘시개를 만나면 재앙이 된다. 2018년 그리스 휴양도시 마티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은 1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서부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대형 산불이 발생한다.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별장들이 즐비한 부촌이 폐허로 변하면서 거주 기피지역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형 산불이 동해안을 덮쳤다. 4일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삼척으로 번졌고, 5일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은 동해시로 번졌다. 울진-삼척 산불은 원인불명이나, 강릉-동해 산불은 60대 방화범의 고의적인 만행으로 밝혀졌다. 겨울 가뭄으로 바싹 마른 숲이 때마침 시작된 강풍을 타고 속절없이 번졌다.

봄철 동해안 산림은 거대한 장작더미와 같다.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계절에 최근 들어 심각해진 겨울 가뭄으로 숲이 바짝 마른 탓이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불에 잘 타는 침엽수림이 많고, 바다에서 산으로 치솟는 높새바람도 봄철에 분다. 이상기후가 아니더라도 산불에 취약한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봄철 동해 산림이다. 역대 최대 산불인 2000년 동해안 산불과 낙산사와 보물인 동종을 전소시킨 2005년 양양 산불, 불씨들이 이산 저산 날아다녔던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이 모두 4월에 발생했고, 1~5월 사이 해마다 동해 산불은 그친 적이 없었다.

연례적인 재앙인 만큼 예방과 대처에 빈틈이 없어야 맞다. 고의적인 방화는 엄벌에 처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고, 산불 발생 초기에 과하다 싶을 만큼 초기 진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