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선거는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지난번 대선이 탄핵과 함께 시작되면서 유난히 짧게 느껴졌던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각 당에서 예비경선이 전국을 돌며 온갖 화제와 함께 '후유증'들도 낳았고, 그렇게 선정된 주자들이 요란한 잡음들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지지율 널뛰기를 하며 최후 국면에 다다랐다.
돌이켜 보면 작년 여름부터 이번 대선은 벌써 시작되었던 것 같다. 중요한 두 당에서 예비후보 경선이 시작된 한여름을, 나는 일산 명지병원 음압병실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만 11일 동안의 사투 끝에 코로나19 증세는 극적으로 V자를 그리며 회복을 향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걸음도 못 걸을 정도였건만, 세상은 다음번 대통령을 뽑는 일로 난리법석이었다. 가을을 넘기고 겨울 쪽으로 들어서자 선거는 점입가경, 두 후보와 안철수 후보까지 생사를 건 '도박'에 피를 말렸다.
처음부터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태내에서 성장한, 그러면서 민주당의 주류적 흐름에 저항한 두 사람의 각축이었다. 한 사람은 경제적으로 민주당의 '실정'에 실망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다른 한 사람은 권력의 '전횡'에 화난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애초에 야당은 이렇다 할 후보를 갖지 못했고, 여당쪽 사람을 빌려다 선거를 치러야 할 형국이었다. 안철수 후보의 기회는 지난 대선의 'mb 아바타' 마타도어 속에서 상실된 듯했다. 이번 대선은 그에게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중대한 위기였다. 어떻게 해야 이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었다. 민주당 계열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와 그동안의 온갖 정치적 풍상 속에서 살아남은, 그러나 운명적으로 두 당의 대표 주자로 역할이 나뉘어진 이, 윤 두 사람의 각축만이 이 나라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었다.
이름·명분으로만, 필요 위해서만
정의를 외치고 민주를 자임하고
국민 위하는 사람들 세상 사라져야
나는 이 선거 과정을 국면이 바뀔 때마다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했다. 비록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다짐에 또 다짐했지만 늘 이상에 비추어 현실을 평가하는 뿌리 깊은 체질은 어쩔 수 없이 이번 대통령 선거의 의미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과연 정의롭다는 것은 무엇이냐, 민주적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분법에 익숙해 있었다. 이쪽은 정의롭고 저쪽은 부정의하며 이쪽은 민주적이요 저쪽은 비민주적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 오래된 이분법적 프레임을 깨뜨렸다. 처음부터 선거는 정의며 민주를 구체적으로 따져 물어 생각하게 했다. 문제는 독재나 좌익 그 자체가 아니요, 누가 정말 이 세계를 정의롭고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정의여서 정의로울 수 없고 민주라서 민주적일 수 없고 국민이 들어간다고 자동으로 국민을 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는 인격을 둘러싼 각축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실상을 말하면 우리는 정당의 빛깔과 세력의 좌우에 현혹되어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본격적으로 판이 열리자마자 온갖 네거티브 선전으로 점철되었다. 진흙탕 싸움이라는 말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은 있었다. 우리 모두 각축하는 후보자들의 인격 자체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이념과 실체 사이의 간극을 예리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사람들은 이념만큼이나 인격에 이끌렸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념을 조정하기에 바빴다. 나쁘지만은 않은 경과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후 서로가 공동체 구성원임을
긍정하고 함께하는 세상 만들어야
이제 곧 선거는 끝난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새 나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나라를, 집권자를, 그 세력을 원하는가.
이름으로만, 명분으로만, 필요를 위해서만 정의를 외치고 민주를 자임하고 국민을 위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사라져야 한다. 피 말리는 경쟁이 끝나고 나면 서로가 이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긍정할 수 있는, 함께 손잡고 언덕에 오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파수공행(把手共行), 함께 새 정의, 새 질서, 새 나라를 일구어 가야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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