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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우리는 평소에 '국가'와 '국민 정체성'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경우는 대통령 선거 때나 올림픽과 같은 글로벌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팀을 응원할 때다. 정치학자 잭 시트린과 데이빗 시어스는 '국민 정체성'이 세 가지 요인, 즉 국가에 대한 소속감, 국가와 국민에 대한 애착감, 국민이 되는 기준과 범위를 규정하는 규범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한 인간이 사회집단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살아가려면 '바람직한' 자아 정체성 형성이 필수적인데, 국민 정체성은 개인의 자아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는 심신 건강한 국민이 필요하므로 국민이 바람직한 국가관과 국민 정체성을 가지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한다. 다소 '강제적인' 방법의 대표적 사례는 1968년에 대통령령으로 선포되어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강제로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다. 이 헌장은 26년이 지나 1994년에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었고 2003년에 대통령령으로 국민교육헌장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국민의 교육 수준과 민주 시민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강제적 방법이 더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민 정체성, 개인의 자아에 큰 영향
과거의 강제적 사례 '국민교육헌장'
이젠 자발적 방법이 효과적인 시대


이제 우리는 바람직한 국가관과 국민 정체성 형성을 위해 '강제적' 방법보다 '자발적' 방법이 훨씬 효과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 스스로 국가관과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자발적 방법은 문화예술과 스포츠 부문에서 한국인이 다른 국가 사람들과 경쟁하여 인정받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는 중국의 편파 판정 논란을 보면서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를 별 탈 없이 치른 한국의 '국격'을 생각하고, 한국인으로 태어나 러시아인으로 귀화한 중국팀 코치 안현수(빅토르 안)를 두고 '국민의 자격'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한국팀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국가 소속감'을 재확인하게 된다.

사실 스포츠의 기본 속성 중의 하나는 개인 간이나 집단(팀) 간의 '경쟁'이다. 국가끼리 경쟁하는 글로벌 스포츠 경기는 관람자들에게 국민 정체성을 (재)형성하는 장(場)을 제공한다. 스포츠의 또 다른 기본 속성은 '놀이성'인데 놀이는 생활상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목적 없는 활동으로서 즐거움을 동반하는 자유로운 활동이기 때문에 글로벌 스포츠 경기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자발적인 방법으로써 국민 정체성의 형성을 돕는다. 따라서 스포츠는 시민혁명으로 서구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가 형성되는 시기에 국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손기정 마라톤 선수나 엄복동 자전거 선수를 민족의 영웅으로 내세우고, 1960~80년대에 국위 선양을 위해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 힘쓰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우는데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포츠 관람 국민 정체성 재형성 場
국가 넘어 '세계시민' 깨닫는 기회도


물론 글로벌 스포츠 경기가 국가 간의 경쟁을 통해 국민 정체성만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스포츠 경기는 국가별 차이를 초월한 '공통 규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경기 참여자나 관람자는 인간이 해내는 스포츠 수행(performance)의 성공과 좌절을 보면서 우리가 모두 '사람(Homo sapiens)'이라는 같은 종(species)임을 깨닫는다. 이런 맥락에서 글로벌 스포츠 경기는 인간이 국가 경계를 넘어서 지구에 함께 거주하는 '세계 시민'임을 깨닫는 기회도 제공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면서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러시아의 경기 참가를 배제한 것도 세계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세계 시민적 덕성에서 비롯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 시기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가 겹치는 요즈음 다시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엔더슨은 근대 국민국가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는데 이것은 국민이 공유하는 공동체 문화와 국민 정체성의 형성으로 만들어진다. 국가라고 하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데 글로벌 스포츠가 보여준 영향력에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