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는 독일어 갈고리(Haken)와 십자가(Kreuz)를 합친 조어이다. 히틀러는 독일 게르만 민족의 뿌리인 아리안족의 상징으로 간주해 나치 정권의 상징으로 삼았다. 하켄크로이츠의 원형인 만(卍)자 문양은 고대 여러 민족들이 종교적 의미로 사용해왔다. 한자 문화권에선 불교를 통해 문양 자체를 글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성한 문양이 나치의 상징이 되자 공포의 대상이 됐다. 나치 군대는 하켄크로이츠 깃발 아래 2차 대전을 일으켰고, 600만명의 유태인이 하켄크로이츠가 나부끼는 수용소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하켄크로이츠가 절대악의 상징이 된 탓에 수천년 전승된 만(卍)자 문양의 신성함이 훼손됐다. 독일은 나치즘을 선전하고 광고하기 위한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도 공포의 문양과 문자가 등장했다. 전쟁 중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요충지에 원 안에 X자를 그린 문양이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개전 초기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주요 포격 지점을 표시한 것으로 판단했고, 국민들이 문양 지우기에 나섰다. 실제로 지상작전에 실패한 러시아는 대량 인명 살상이 불가피한 무차별 포격과 폭격을 자행하는 만행을 벌였다.
최근엔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Z' 마크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처음엔 러시아 탱크나 군용차량에서 발견된 Z마크가 러시아내 전쟁 지지여론의 상징으로 확산되면서다. 푸틴을 지지하는 청년들은 Z를 새긴 상의를 입고 소셜미디어에서 전쟁을 지지하는 정치 선전을 벌이고 있다. 카타르 기계체조 월드컵 시상대에 선 러시아 남자 체조 선수는 금지된 러시아 국기 대신 유니폼에 'Z'를 붙이기도 했다. Z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선인 서쪽(Zapad),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승리할 것(Za pobedu) 등등 다양한 해석과 추측이 나온다. 러시아 정부는 의도적으로 'Z' 마크를 러시아군과 국민 결속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Z를 겹친 만(卍)자 로고를 SNS에 올렸다. 'Z'를 하켄크로이츠로 해석해 러시아를 나치와 동일시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서방 자유국가들도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지지할 것이다. 문자 Z가 난데 없이 위기에 처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