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1일. 멕시코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마리(37)씨가 낯선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식당 '마리 데 키친'의 문을 연 날이다.
'주방의 마리'라는 뜻을 가진 '마리 데 키친'에서는 마리씨가 주방에서 직접 만든 멕시코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어렵게 시작한 식당이 어느덧 개업 1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찾은 인천 동구 배다리 마리 데 키친. "올라(hola, 스페인어 인사말)." 흥겨운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에 들어서자 마리씨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처음 문을 연 날에 낮 12시가 되니까 손님들이 몰려와 당황했다. 주문부터 음식 서빙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개업 첫날의 상황을 떠올렸다.
마리씨가 식당 개업을 결심한 데에는 자신이 속한 협동조합 '글로벌에듀'의 경영 악화가 크게 작용했다. 글로벌에듀는 인천 결혼이주여성들의 자립을 위한 협동조합이다. 다문화 강사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주축이 돼서 만들었다.
다문화강사 협동조합 '글로벌에듀'
코로나 확산으로 존폐위기 놓이자
배다리 '마리 데 키친' 운영 활로
미추홀구(당시 남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던 결혼이주여성들의 친목 모임이 2016년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현재 글로벌에듀에는 마리씨를 포함해 결혼이주여성 11명과 사회복지사 3명 등 14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글로벌에듀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다문화 강의, 다문화 체험 행사 등으로 수익을 냈지만 코로나가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강좌, 지역 축제 등이 없어지면서 3개월 만에 법인 계좌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존폐 위기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폐업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때마침 동구가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을 위해 창업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마리씨가 식당 운영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마리씨는 "평소 요리하는 걸 좋아해 엄마에게 물어보면서 멕시코 음식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을 즐겼다"며 "평소 인천에 남미의 분위기를 살린 음식점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는데, 제대로 된 멕시코·남미 음식을 알릴 좋은 기회일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업 3개월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식당이 입소문을 타며 조금씩 자리 잡아가나 싶었지만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조치 강화 등으로 손님이 뚝 끊겼다.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하루 한두 팀의 손님이 오는 데 그쳤다.
텅 비어있는 식당을 볼 때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니까 견디면 앞으로 나아질 거야'라고 수없이 혼잣말하며 마음을 다잡아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식당 영업 걱정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방역조치 강화 손님 뚝 끊기기도
"친구들 '손님 끌 방법 고민' 위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는 마리씨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된 건 글로벌에듀 조합원들이었다.
마리씨는 "처음 식당을 하기로 했을 때도 조합원들의 '함께 해나가자'는 말이 없었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업이 끝날 때면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올지를 함께 고민해준 친구들이 있어 위로가 됐다"고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리 데 키친에는 그의 친구이자 글로벌에듀 조합원인 미얀마, 페루 결혼이주여성 2명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손을 거들고 있다.
음식을 먹고 가는 손님들의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에서 힘을 얻는다는 마리씨는 "앞으로 많은 손님이 멕시코 현지 음식을 맛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가는 마리 데 키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