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과 물과 땅의 기운이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지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은 없다. 대권을 잡으려 선영을 옮긴 정치인은 많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러니 확정된 결과를 놓고 명당 덕이네 탓이네 하는 건 우습다. 그래도 풍수로 현상을 해석하려는 민간의 인식은 집요하다.
1967년 수원시 팔달산 기슭에 지어진 경기도지사 공관은 풍수적으로 악평이 끊이지 않았다. 정조 때 전염병 환자와 시신을 안치했다 해서 '병막(病幕)'이라 불렸다는 터의 연원부터 음산하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등 역대 지사가 대선 본선과 경선에서 패배하자 공관 터 때문이라는 풍설이 퍼졌다. 남경필 전 지사는 공관을 '굿모닝 하우스'로 리모델링해 도민에게 환원했는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사 시절 재입주했다가 이번 대선에서 패했다. 경기도지사 대권 무덤설과 공관 저주설이 어김없이 회자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풍수 흉설의 단골이다. 땅 자체가 모래섬이라 지세가 굳건하지 못한 데다 배수진의 지세에 상여 모양 의사당 건물이 들어서 여야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청와대 흉지론은 이승만 하야, 박정희와 육영수 시해, 전두환·노태우 구속, 노무현의 비극, 이명박·박근혜 수감 등으로 이어진 역대 대통령 수난사 때문에 강력하다. 땅 기운 말고는 대통령들의 비극을 설명할 길 없다는 결과론적 경험칙이다.
하지만 풍수지리도 사람이 빠지면 허무맹랑하다. 선영을 옮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됐지만, 이회창은 실패했다. 대통령들의 비극도 그들의 원죄와 통치의 결과였을 뿐이다. 국회의사당을 옮겨봐야 정치와 정치인들이 바뀌지 않고서야 해오던 타령을 벗어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를 버리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 이행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하고 취소했던 공약이다. 공약의 핵심은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인 청와대를 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왕적 권한을 버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일은 사람인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터와 건물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도 풍수가 아니라 새정치를 위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중요한 건 대통령의 안전이다. 국민과 가까워지는 만큼 경호의 위험도 커진다. 완벽한 경호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