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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하늘에 오른 용은 후회하고 가득 차면 이지러지는 법이다. 주역의 제1괘인 '건위천'의 맨꼭대기 양효에 대한 해석으로 잠룡과 현룡, 비룡과 항룡의 변화와 그 처신도 함께 제시하고 있어 제왕학 서설처럼 드라마틱하게 들린다. 잠룡(潛龍)은 물 밑에서 잠복 중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덕을 쌓으며 때를 기다릴 것. 현룡(見龍)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군주의 신임을 받는 상태이므로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켜야 하며, 비룡(飛龍)이 힘차게 하늘을 나는 모습은 제왕의 지위에 오른 군주와 같다고 하였다. 항룡(亢龍)은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으로 반드시 추락하게 마련이니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역대 대통령들도 집권 초 높은 지지율이 실정으로 곤두박질치거나 레임덕에 걸리는 궤적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표로 드러난 민심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론에 기대 낙승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0.73% 초박빙, 패배가 내포된 승리이다. 정치에서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없다.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2년 후 총선에서 민심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尹 당선인과 인수위, 민심의 행간 잘 읽어야
지켜야 할 '공약' 집착하고 서두를 필요 없어


당선인과 인수위가 외형적으로는 국민통합과 협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정작 실천은 딴판이며 공약들을 국정과제화하는 과정에서 국론 분열이 일어날 조짐도 엿보인다. 인수위원회 구성에 '여성'과 '통일'은 빠져 있다. 선거과정에서 이준석 대표가 스스로 '복어요리'라고 불렀던 젠더 갈라치기의 일환으로 제기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밀어붙일 요량이다.

여가부 폐지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 실제로 여가부 예산 중 여성과 성평등 관련예산은 8%에 불과하다. 나머지 60%는 가족돌봄정책에, 20%는 청소년 보호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지출예산으로 봐도 여가부는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가족과 청소년들을 위한 정부 조직으로 기능과 역할은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

남북간 긴장감을 고조시킬 선제타격론, 국론의 분열과 중국의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사드배치계획은 재고해야 한다. 대통령의 취임선서를 상기해보라. 대통령은 헌법준수와 국가보위,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 민족문화 창달과 함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그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약속이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유지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헌법상 대통령의 핵심 책무이다.

주 52시간제 폐지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항으로 의회에서 야당과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공약이며, 중소기업을 위한 '최저임금제 탄력적 운영'도 법개정 사항으로 의회에서 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다.

우선 순위 정하고 공론화도 거쳐 추진해야
0.73% 표차 '언제든 지지철회' 경고 메시지


공약은 물론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집착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 인수위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확정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정책의 타당성과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정책구상을 밀어붙인다면 그건 공약 이행이 아니라 점령군의 횡포일 뿐이다.

인수위는 국민이 겪고 있는 불행 자체를 직시해야 한다. OECD 최하위인 한국인의 행복지수, 높은 노인 빈곤율,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같은 지표는 국민 대다수가 고통스럽고 우울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 수준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만성적 실업도 해법이 없는 사회이다. 국민의힘이 탄핵 5년만에 재집권하게 된 것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크고 깊은 탓이었지 결코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0.73%의 표차는 오만하지 말라는 뜻,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통합과 협치 없이는 국정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선거과정에서 이념과 세대, 젠더갈등까지 증폭시켰다. 2030 젠더갈등을 자극하여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20대를 분열시킨 원죄는 씻어내야 하지 않나?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