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오후 6시20분 고양시 일산동구 아파트 현관에서 25살 청년 김도현씨를 만났다. 도현씨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과를 마치고 막 집에 돌아온 참이다.
"도현이 왔어?" 아들의 손을 잡은 정미경(52)씨가 익숙하게 계단을 오른다. 도어락 앞에서 엄마는 아들의 손가락을 붙잡고 숫자를 천천히 되뇌며 비밀번호를 누른다.
"도현이가 맨날 마지막 번호를 잊어버려요"라고 말하며 정씨가 멋쩍게 웃었다. 도현씨는 1급 발달장애인이다.
25살 도현씨 돌보는 52살 엄마 미경씨
"보호센터·특수학교·집 한정된 생활
집 안에서 도현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관찰자가 누구일까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귀가 후 엄마는 아들을 먹일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엄마가 주방에 있는 사이 도현씨는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집을 비운 동안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하는 '루틴'이라고 한다.
식사 준비로 한창 바쁜 엄마 옆에서 도현씨가 무언가를 요구한다. 요구사항은 목소리의 높낮이로만 파악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인 도현씨가 말을 하지 못해서다. 단어도, 문장도 없지만 엄마는 대번 아들의 요구를 알아 맞힌다. "텔레비전 보고 싶어? 밥 먼저 먹고 보자."
미경씨는 아들의 손가락을 집어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 "도현이 좋아하는 '뽀로로' 보려면 이렇게 하면 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
절망 견뎌낸 母子, 용기내 세상 밖으로
미경씨는 종종 아들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고 느낀다. "발달장애인은 특수한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요. 결국 집, 보호센터, 특수학교에 한정되죠. 우리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이날 만남을 통해 보이지 않는 '특수한 공간'에서 살아온 엄마와 아들이 세상 밖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런 용기를 낸 이유는 지역사회와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생후 28개월에서야 뒤늦게 인지한 장애, 감정 표출이 시작된 사춘기 무렵부터 시작된 어두운 터널, 함께 다리 밑으로 떨어지고 싶었던 끝모를 절망을 지나 모자가 도달한 곳은 다시 지역사회고 또 이웃이다. 모자는 이웃의 따뜻한 눈길, '평범하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 관련기사 5면(장애인 '다름' 인정하는 태도… 가족이 원하는 '국가책임제')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