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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온 마을에 스멀스멀 악의 기운이 넘실거릴 때 오직 한 사람 이를 알아본 무녀가 말한다: "뭣이 중헌디!". 악을 막기 위해서는 그 실체를 알아야 하지만, 그에 맞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행할 수 있고, 행해야만 이겨낼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악을 이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죄가 된다. 그 무지가 클수록 그 죄도 클 수밖에 없다.

촛불을 들고 외쳤던 시민의 소리를 듣지 않았고, 알려하지도 않았던 정권이 무너졌다. 정권을 넘겨준 것이야 그들 탓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무너지고 우리 마을에 악의 기운이 흘러넘친다면 그건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이 정권은 시대정신을 철저히 외면했을 뿐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명확한 사실조차 알려하지 않았다. 권력이든, 그것이 주는 정치적 이익이든, 또는 한 줌 이념 때문이든 이 정권은 시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20년 정권' 운운하던 헛소리가 미망이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고 민주당 실세들이 있다. 이 사회가 퇴행한다면 그들은 촛불을 들고 외쳤던 모든 시민들에게 석고 대죄해야 한다. 


양극화 비판하고 불평등 경고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치는 사라져야


시민에 의해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받아야 한다는 SNS의 글이 연일 화제다. 물론 정치적 탄핵은 불가능할뿐 아니라, 그동안 이 정권이 이룩한 작은 성과에 미루어보면 이런 글이 지나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것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보지 못하고 다만 그 글의 단순함과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 비난만을 탓한다면 민주당은 정말 답이 없는, 한 줌 정치적 이익만을 좇는 시대 역행적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 시대는 그 시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일들이 있다. 이런 소리가 개개 시민을 통해 시대정신으로 드러난다. 그 시대정신은 일차적으로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정성을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정치 권력화된 집단을 개혁하라는 요구였다.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당함을 다만 그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왜곡하는 주류 언론을 개혁하라는 목소리였다. 경제선진국이 되고 GDP가 엄청나게 커진들 무슨 소용인가. 분배되지 않는 경제성과는 오히려 나의 일상을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양극화를 비판하고, 불평등을 경고해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정치는 사라져야만 한다. 법과 언론과 정치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왜곡한 집단에게 어떤 미래를 기대할 것인가. 제3지대 정치가 절실히 필요함에도 스스로 위성정당을 만드는 거짓, 무공천을 약속했음에도 한 손으로 뒤집은 위선, 자신을 비웃는 법과 언론에 기대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는 안일함, 경제적 불평등에 허덕이면서 이걸 고쳐달라는 수많은 약한 이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거부한 그 권력욕을 비판하지 않으면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작은 성과 불구 이 시대가 필요로 한
중요한 일 하지 않은 무능 지탄받고
개혁과제 행하지 않은 책임도 져야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는 비판이 아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나 담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퇴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듣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채, 적당히 공생하려한 그 무지와 무능이 이런 퇴행의 길을 예비했다. 당신들이 이룩한 작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무능은 심하게 지탄받아야 한다. "뭣이 중헌디?"라는 소리를 듣지 않은 채 개혁의 과제를 행하지 않은 책임을 철저히 져야 한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하인에게 달란트를 주었다. 누구는 다섯 배를 또 누구는 두 배의 이익을 남겼다. 모두 보답을 받았지만, 달란트를 묻어두었던 하인은 단죄받았다. 무지에서든, 담대하지 못해서였든 지옥의 첫째 자리는 행동하지 않은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성서는 말한다.

이미 사라졌어야할 반공동체적 힘이 되돌아오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그 악에 무지할 때 그 마을에는 악이 흘러넘치게 된다. 시대정신은 정치적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선을 향한 열정으로 움직인다.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집단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