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해 11월 24일 공개한 사진 한장이 커다란 울림을 남겼다.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백마고지에서 발견된 무명의 국군 전사자. 유해는 적을 향한 사격자세를 유지한 모습 그대로였다. 유해 주변엔 청녹색으로 산화된 실탄들이 널려 있었다. 머리와 그 옆에 벗겨진 철모엔 적탄이 관통한 흔적이 뚜렷했다. 교전 중에 숨진 것이 확실했다. 그의 생명은 찰나의 순간에 꺼졌을 테고, 가족을 떠올릴 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명용사가 이름을 찾고 가족 품에 안겼다. 국방부가 지난 17일 밝힌 전사자의 신원. 고 조응성 하사. 1928년 경북 의성 태생. 1952년 5월 제주도 제1훈련소 입대. 1952년 10월 백마고지에서 전사. 입대 당시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있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당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가장. 70년 동안 사격자세를 유지하며 잊힌 전쟁터를 고독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국방부는 백마고지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를 살펴 유족들을 찾았고 유족들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덕분에 조영자씨는 아버지 조응성을 70년만에 만났다. 70대 딸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장면을 '맛'으로 각인해 놓았다. 아버지가 사온 오징어를 맛있게 먹었단다. 유년의 소녀가 70년 간직해 온 '맛'의 기억이 행복과 고통 사이 어디쯤일지 가늠하기 힘들다.
국방부는 조응성 하사의 신원을 언론에 공개한 당일 인천 남동구 따님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행사 진행 예고만 있었지, 행사 장면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고 의아하다. 유족들의 뜻이 따로 있었는지 모르나, 70년 세월의 강을 건너온 호국영웅의 귀환 행사를 예고로만 끝낼 일인가 싶다.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은 전사자의 귀향 봉송을 극진하게 예우하는 미국과 미국인을 보여준다. 호국선열을 위한 의식은 국가와 국민을 결속시키는 제의이다.
국방부는 2000년부터 6·25 전사자 유해발굴을 시작해 1만여구의 유해를 찾았으나 185명만 신원이 확인됐다. 전사자 대부분이 비목 하나 없이 묻혀있다 귀환했지만 여전히 '무명'이다. 무명의 희생을 기릴 방도로 조응성 하사의 마지막 장면을 교과서에 수록했으면 한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의 기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