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남문 감돌던 습습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면
일손을 놓고 달려와 팔달산 언덕을 오른다.
낮은 담장과 굽은 성터에서 풍겨오는
흙냄새가 어머니 젖가슴처럼 마음을 열고 반긴다.
담장 아래 토닥거리는 키 낮은 햇빛과
느리고 뒤끝이 흐린 수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외할머니 집으로 가던 골목길은 끊어졌으나
풍상의 세월을 열고 닫는 수원 남문은
오늘도 세상사를 의연하게 굽어보며 서 있다.
최동호 「수원 남문 언덕」중에서….
먼저 1979년 경남대와 1981년 경희대를 거쳐 1988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정년을 1년 남겨 놓고 고향에 돌아온 그가 먼저 한 일이 있다. 그것은 수원시민을 상대로 고향의 지명을 내건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창작 교실'을 연 것이다. 물론 자비를 들여 무료 창작 교실을 운영했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남은 시간은 어릴 적 살던 수원으로 돌아가 시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시를 알려줄 계획을 실천한 것에 불과했다. 반세기 동안 '수원 남문 돌계단'은 시인이 "세상의 바다 멀리 나가 거센 폭풍우에/심하게 흔들릴 때마다/돌계단의 그 햇살은 어둠 속의/나에게 신비로운 영혼의 빛을 비추어 주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자신을 지켜준 빛에 대한 부채에서 비롯된 것, 이에 수원의 빚을 세상의 빛으로 청산하고자 했던 것.
2012년부터 시작된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창작 교실은 수원이 아닌 서울과 지방에서 와 수강을 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강사진은 문단에서 명성이 나 있는 문학 교수와 신예 시인들로서 도움이 컸다. 이들은 주로 최동호가 직접 시를 가르친 제자들과 후배들로 구성되었는데 스승의 가르침이 스승의 고향에서 열매를 맺은 것. 15주차로 구성된 강좌는 5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수원이 인문학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는 데 동력을 부여했다.
다음 해인 2013년 여름부터 '화성행궁 수원시인학교'를 남창초등학교에서 개최했다. 이곳은 유년의 '황금 햇살'같은 추억이 가득했던 곳으로 "지각한 초등학생 하나/쥐죽은 듯 조용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낯선 교실로/전학 후 처음 올라가는 계단"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또한 어느 순간 고향이라는 '바다를 잃어버린 소년'이 다시 찾은 "바다보다 넓은 운동장을 잃어버린 내가 작아진"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도 하다. 남창초등학교에서 시인학교를 1박 2일 동안 개최하여 전국에서 활동하는 후배 교수들과 기성 문인들을 초대했다. 유명 문인들과 수강생들이 교류하게 함으로써 외적으로 수원 지역을 알리고, 내적으로 문학에 목마른 수강생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이곳에서 배출된 500여명의 수강생 중에는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면서 성과를 냈다. 그것은 그동안 교단에서 배출한 100여명의 문학인 후학들의 후속이기도 했다.
정년 후에는 수원 문학 관련 단체 및 소모임 등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현직에 있을 때 정계 진출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였지만 수원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거기에는 '문학'과 '고향'이라는 요소가 깃들여 있는지부터 먼저 살폈다. 그것은 '수원 사랑'과 '문학 정신'이 합일된 과업 중 하나일 뿐. 거기에 수원시 인문학 자문 위원은 물론 수원문인협회를 비롯해 각종 문학단체에서도 수원 문학과 수원 문화예술 발전에 대해 열정을 쏟았다. 또한 한국시인협회 회장과 대한민국예술인 회원을 역임하면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 수원에서 전국시인대회, 수원 화성 문학기행, 국제시낭송회 등 각종 행사를 직접 주관하고 챙겼다. 그것은 오직 한 줄 시를 통해 수원 "사람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고, 동네는 다시 활기에 넘치고 정다운 웃음소리가 피어나기 시작한 꿈의 마을"('황금물고기')을 위해서.
수원으로 돌아온 최동호의 '인연의 원점'이 수원에서 비롯되었듯이 "문학도 그러하지만 모든 인간은 모성의 고향으로부터 출발하여 세파를 헤치면 살아가다가 모성의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 시작하고 싶은 원초적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라는 전언이다. 이 책에 실린 '시와 노래'는 그러한 수원을 향한 최동호의 50년 시력이 수원에 터를 두고 펼쳐진 것을 의미한다. 그가 풀어 놓는 한 줄 시어 속에서도 우리는 어린 소년의 설레는 숨 가쁨이 요동치고 있음을 감득하게 된다.
그런 최동호 글에서 일관된 것은 그의 인생과 문학 여정이 수원으로 회귀하는데 맞춰져 있다는 데 있다. 이 회귀는 단순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싶어 했던 마음속 소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창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며 도서부장과 문예반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년기부터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가족들이 부재한 소년, 멀리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외갓집에서 홀로 책을 읽던 소년, 내성적인 소년의 외로움은 더해가는 결핍으로 자리 잡았다. 있는 것이 사라진 후에 오는 외로움과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기다림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러한 부재와 결핍은 그림자로 남았지만 그림자는 오히려 문학을 하는데 양질의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바로 "명상하는 소년이"('해질 무렵') 되어 그림자를 어둠이라고 하지 않고 '채색된 일몰'로 투사한다. 거기에 존재하는 '사라져간 그림자의 외로움'을 '가라앉은 온갖 나뭇잎들의 수런거림'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사유의 그림자'를 생성하는데 이는 그의 시에서 사라지고, 퇴색되고, 녹슬고, 빛이 바래는 등의 소멸해 가는 사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근원성을 추궁한다. 최동호의 시의 '사유의 그림자'는 그가 깨달은 지혜로서 불교에서 "그 모든 무성한 노란 꽃은 모두 반야 아닌 것이 없다"(鬱鬱黃花 無非般若)는 것과 통하는 지점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 그는 2011년 12월 10일 한국 문인 최초 스웨덴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한다. 호암상위원 자격으로 노벨상위원회로부터 공식 초대되어 세계지성의 축제를 경험하는 등 국내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그런 그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활자문화의 급속한 퇴진과 디지털 문화의 가속화로 인해 문학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20세기후반부터 시작된 디지털 문화는 활자문화에 근거한 문인들의 고정관념을 뒤바꿀 새로운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데서 극소지향의 단형시를 제안했다. 극서정시로 명명된 이 시편들을 통해 시대정신을 대변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21년에는 영문 시선집 'Monarch Butterfly'로 전 세계의 작가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제18회 제니마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수원문화예술인 발굴과 선양을 목적으로 하는 (사)수원문화도시포럼의 첫 번째 출품작이다. 영통구청장을 역임한 박례헌 대표는 "한국현대문학을 개척해온 문호인 최동호 시인의 행적과 작품은 고스란히 우리 고장의 향토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는 수원이 인문학 도시와 법정문화 도시로 나아가는데 충분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라고 했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최동호 시인은 이 책에서 1976년부터 수원을 모티브로 창작해 온 시편들과 이를 노래로 작곡한 악보들을 엮었다. 1부에는 그가 태어난 남문과 팔달산, 화성행궁 등을 중심부로 하는, '수원의 시' 43편을, 2부에는 '수원의 추억'을 회상하는 산문 8편과 최 시인의 시평에 관한 소묘를, 3부에서는 최 시인의 시를 작사로 작곡한 '수원의 노래' 10곡의 악보가 실려 있다.
최동호가 사유해온 '수원 남문 언덕'을 읽다가 보면 독일 라인강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을 연상하게 한다. 수원 남문의 "낮은 담장과 굽은 성터에서 풍겨오는/흙냄새가 어머니 젖가슴처럼 마음을 열고 반긴다."라는 대목에서 라인강변의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말이/가슴 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친숙한 '로렐라이 언덕'은 독일의 하인리히 하이네(1799~1956)의 서정시 '귀향시편'에 프리드리히 질허(1789~1860)가 곡을 붙인 노래다. 하이네의 '귀향시편'인 '로렐라이 언덕'이 전 세계의 서정을 넘나들고 있듯이 최동호의 '고향시편'인 '수원 남문 언덕' 또한 한류의 물결을 타고 세계의 정서를 파고드는 데 있다. 이 또한 법정 인문도시를 표방하는 수원의 역할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의 수원 시선집 '수원 남문언덕의 노래'는 시인에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의 생산지이면서 근원에의 영원한 본향인 것처럼 수원시민에게 고유한 언어 유산으로서 후손에게 물려줄 자랑이다. 우리에게 그의 '시의 고향'' 수원은 서정이 탄생하는 처음의 순간을 탐색하는 공간이면서 정신의 정화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 간의 인생과 문학 여정과 함께 그의 고향 회귀는 긍정적 선택의 결과이며 기쁨의 산물로서 그가 말한 종국에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운명에의 의지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실천적 책무가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