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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를 깜짝 도입한 김영삼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93년 3월, 개혁에 시동을 걸면서 고위공직자들 재산을 전격 공개했다. 당시는 관련 법이 제정되지도 않아 근거도 없었으나, 여권 인사들은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자진해서 앞장선 때문이다. 장관급 공직자 29명, 청와대 비서진 11명, 여당인 민자당 의원과 원외당무위원 161명, 장관급 인사 125명이 뒤를 이었다.

사회 전반에 메가톤급 파장이 일었다.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불법, 탈법적 부동산 투기와 증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산 형성 과정은 불투명했고, 위·탈법 소지가 다분했다. 일부 인사는 재산을 고의 누락 또는 축소한 사실이 밝혀져 망신을 샀다. 많은 국민이 공분했고, 공직사회는 초토화됐다. 도덕 불감증과 재물에 대한 집착 등 고위공직자들 민낯이 드러났고, 권위와 명성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여론조사 결과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국민이 많았으나 공개 자체는 긍정 평가를 받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가 31일 재산공개대상자 1천978명의 신고재산을 공개했다. 평균 16억2천145억원으로, 지난해 14억5천514억원보다 1억6천631만원 증가했다. 중앙부처 재직자 816명 중 118명(14.8%)은 다주택자였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재산 증식의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피부양자가 아닌 직계존비속은 고지를 거부한 경우가 많아 가족 전체의 재산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전체 289명인 국회의원 가운데 240명(83%)은 재산이 늘었고, 176명(60.9%)은 1억원 이상 증가했다. 25명은 5억원 넘게 불었다. 다주택을 보유해 매도각서를 쓴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일부는 서울에 소재한 '똘똘한 한 채'를 선택했다.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집을 팔고 강남 아파트를 지킨 수도권 지역구 의원도 여럿 있었다. 일부는 다주택자이면서도 처분을 하지 않고 눈치를 보며 버티기 중이다.

공직자윤리위는 6월 말까지 재산변동 심사를 한다. 재산 형성과정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거짓 기재나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 경우 엄벌하기로 했다. 부와 명예, 권력을 다 가질 수 없게 된 세상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한 욕심으로 낭패를 보는 우인(愚人)이 적지 않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