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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세계에 두터운 팬덤을 형성한 종합격투기(MMA)가 제도권 스포츠로 자리잡은 역사는 짧다. 세계 최고의 MMA 단체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초창기 경기규칙은 체급도 글러브도 없이 물어뜯기와 눈찌르기만 제외하고 모든 공격이 가능했다. 케이블 방송들이 경기를 유료로 판매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유혈 난투극은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UFC는 2001년 데이나 화이트에게 인수된 뒤 기사회생한다. 체급을 나누고 경기규칙을 정비해 대중 스포츠로 변신한 뒤 케이블 방송과의 협업으로 MMA 시장을 장악했다. 화이트는 200만 달러에 매입한 UFC를 2016년 40억 달러에 매각한 뒤에도 경영을 계속 맡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경기규칙을 강화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했다지만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모든 공격이 가능한 경기는 선혈이 낭자하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일도 다반사다. 심판의 제지가 없으면 의식을 잃은 상대를 계속 가격하는 경기방식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피범벅이 된 얼굴은 흑백 처리로도 위화감을 감추기 힘들다. 그나마 선수들이 포옹하고 격려하며 무도인의 자세를 보여주는 경기후 장면으로 스포츠의 명맥을 유지한다.

국내 MMA 단체 로드FC 정문홍 회장이 최근 정치인 격투기를 추진하며 지원자를 모집하고 나서 화제가 됐다. 허언이 아니다. 민주당 소속 여수 시의원이 지원했는데 지목한 상대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다. 정 회장은 "한쪽은 파란색(민주당)이고 한쪽은 빨간색(국민의힘)인데 서로가 무조건 싫은 것 같다"며 "격투기 안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정치인 격투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싸우고 나면 친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브라질에선 정책 갈등을 벌이던 자치단체 시장과 전직 시의원이 격투기를 벌인 적도 있다. 현직 시장의 판정승 후 두 사람은 포옹하고 악수를 나누었다고 한다. 경기보다는 쇼에 가까운 이벤트였을 것이다.

이 대표가 반응하지 않으니 실제 경기 성사 가능성은 없다. 정 회장도 실제 경기 성사를 기대하진 않았을 테다. 규칙도 자제도 품격도 없는 정치권의 무제한 정쟁이 격투기만도 못하다는 비판 같아 속이 쓰리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데, 우리 정치는 싸우느라 쪼그라든다. 그나저나 이 대표가 침묵하면 기권패인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