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도 전세 계약도 시장에서 결정되는 상품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자연스럽다. 기형적인 임금 구조와 기울어진 계약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어느 정도 정부 개입은 필요하다. 핵심은 적정선이다. 과하면 왜곡이 발생한다. 왜곡으로 인한 피해는 먹이사슬 끝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된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자율적인 계약을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은 영세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임금 노동자, 임차인 모두를 힘들게 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선한 의도였으니 감내하라고 한다면 궁색하다.
세종은 백성들 어려움 함께 나누고
중요한 정책 시행 여론수렴후 결정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임대차 3법을 전면 손질할 모양이다. 폐지 또는 축소를 공식화했다. 이 법은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를 핵심으로 한다. 최대 4년까지 가능한 계약갱신청구권은 폐지하는 대신 전세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전·월세 상한제는 아예 없애거나 상한율을 5%보다 높게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수위가 2년도 안 된 임대차 3법을 손질하려는 의도는 다름 아니다. 시장 왜곡이 워낙 심각해 임차인 피해가 상당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2년 전 민주당은 임대차 3법을 강행 처리했다. 부동산 전문가들과 야당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한 입법을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집 없는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독주했다. 우려했던 대로 전세 물량은 급감하고 전셋값은 치솟았다. 서울지역 전셋값은 최근 2년 동안 무려 23.8%, 임대차 3법 시행 전보다 1억7천만원 뛰었다. 월세 전환도 급증했다. 지난해 서울지역 월세 거래는 7만2천634건으로 19%(1만1천777건) 늘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많았다. 선한 의도가 낳은 정책의 역설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서도 비슷한 징후를 느낀다. 윤석열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한다고 밝혔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지만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청와대든 국방부든 경직된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은 변함없다. 설령 이전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일방통행은 문제가 있다. 혹자는 과감한 결단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렇지 않다. 시간을 갖고 충분히 들은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
코로나로 자영업자·소상공인 한계
집무실 이전이 민생보다 우선인지
자신들은 선한 의도 주장하지만…
세종대왕이 보여준 리더십을 보자. 세종은 국민과 어려움을 나누고 중요한 정책은 여론을 수렴한 뒤 결정했다. 세종 초기 7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계속됐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백성이 늘어나자 세종은 광화문 거리에 솥을 걸고 현장에서 죽을 쑤어 먹이는 진휼을 지휘했다. 또 경회루 동쪽에 초가집을 짓고 기거하면서 고통을 함께했다. 실록은 정승과 판서들이 매일 초가 마당에 꿇어앉아 세종에게 침전으로 들기를 간청했다고 적고 있다. 2년 넘게 계속된 코로나19 상황 또한 그때와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한계에 직면했다. 집무실 이전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또 세종은 끊임없이 들었다. 재임 기간 신하들과 무려 2천회 넘는 경연을 갖고 소통했다. 중요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국민투표와 같은 여론조사를 했다. 세제 시행에 앞서 암행어사를 파견해 설명하고 백성들에게 물었다. 세종은 반대가 많이 나오자 시행을 무기한 연기한 채 보완을 지시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민생보다 앞서는 문제인지, 또 국민에게 충분히 물었는지 의문이다. 자신들은 선한 의도라고 주장하지만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