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정거장 지났을 때였다. "내가 걸린 것 같아. 그런데 아직 검사 안 받았어"란 나직한 말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우리 바로 뒷좌석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던 60대(?) 아줌마 승객이 누군가와의 통화 중에 한 말이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그녀의 얼굴빛이 어두웠다. 그러나 "당신 코로나 환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너무 오버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버스 창문을 조금 열고 마스크 끈을 조였다. 그 아줌마와의 불편한 동승(同乘)은 이후 30여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집사람이 먼저 코로나19에 걸렸고 필자는 다음날에 확진판정을 받았다.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두통이 심했다. 그 와중에서 휴대전화는 질병청과 보건소로부터의 공지사항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한마디로 문자폭탄이었다. 몸도 못 가눌 지경이었지만 워낙 중대한 전염병에 걸렸으니 공지내용들을 하나둘씩 읽다가 순간 화가 치밀었다.
정부의 금족령으로 약 한번 제대로 못쓰고
유명 달리한 수많은 생령들 떠올리면 화가 나
관내 보건소에서 보낸 재택격리통지서에 격리기간과 격리장소(자택)를 지정하면서 격리명령을 위반할 경우 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소상공인들 살린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팔을 걷어붙인 정부가 오히려 대면활동을 자제하고 예방주사를 맞는 등 국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 소시민들을 겁박하는 느낌이 든 것이다.
투병생활이 본격화되었다. 집안에는 우리 부부 2명뿐이라 다른 식구들에 대한 전염 우려가 없어 다행이었으나 치료약이 문제였다.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받을 때 처방받은 해열제를 열심히 복용했지만 효과가 신통치 못했다. 보건소에서 지정해준 담당병원 간호사들의 하루 1회 전화 문진(問診)도 별로였다.
후각은 물론 미각까지 잃었지만 장보기는 언감생심이어서 유통기한 임박한 재고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자니 이 또한 고역이었다. 매일 담당 의료진이 방문 전화할 때마다 식사를 거르면 안 된다고 강조하니 말이다. 특히 체온이 상승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불안이 엄습했다. 작년 말에 코로나19로 급작스럽게 별세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사망 이틀 전에 필자와 문자를 교환했었다.
지인 한 분이 감기약 복용을 권했다. 3년 전에 동네 의원에서 처방해두었던 감기약을 복용했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불현듯 'PCR검사를 받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택격리 대신에 병원에서 감기약만 제때에 처방받아도 고통 없이 회복될 확률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족령(禁足令) 때문에 약 한 번 제대로 못쓰고 유명을 달리했을 수많은 생령들을 떠올리면 정부의 막가파식 대처에 더 화가 났다.
다급해지자 동네 의원들 대면진료까지 허용
이럴거면 왜 거리두기로 서민경제만 망쳤나
일전 버스에서 조우했던 60대 아줌마 승객이 코로나 의심환자였다면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이 PCR검사를 받지 않는 사례들도 적지 않단다. 의료진들까지 확진 사실을 숨기고 일반 환자들을 진료하는 지경이란다. 샤이오미크론환자들이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2020년 1월20일 국내에 처음으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 2년3개월 만에 대한민국 인구의 26%가 코로나19에 걸렸다. 누적 사망자수는 1만7천명에 육박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지난 2월6일 누적 확진자수 100만명 돌파 이후 60일 만에 무려 1천400%나 폭등한 점이다. 중환자수는 물론 사망자수도 역대 최대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코로나 공포에 노약자들은 전전긍긍이다. 또한 코로나를 앓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가 3월 말부터 동네 의원들의 코로나 대면진료를 허용했다. 이럴 거면 뭐하러 거리두기 한답시고 서민경제만 망쳤나. 문재인정부가 세계만방에 자랑했던 'K-방역'의 현주소이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