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의 한 전원마을이 인적이 끊긴 채 적막강산이 됐단다. 주민들이 밤낮으로 외출을 삼가고, 동네 나갈 일이 있으면 차량으로 이동하는 탓이다. 마을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곰 탈출지역 현재 포획중으로 입산금지'.
지난해 11월 이 마을에 있는 곰 사육장에서 반달가슴곰 다섯마리가 탈출했다. 네 마리는 포획했지만 한 마리는 네 달 넘게 종적이 묘연했다. 다행히 최근 인근 마을 뒷산에서 발견돼 용인시가 포획에 나선 상태다. 오랜 시간 굶주린 곰과 조우했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집 나간 곰이 사람들을 집에 가둔 셈이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 서식 복원사업으로 대중에게 친숙하지만 엄연한 맹수다. 조건만 맞으면 손쉽게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반달가슴곰이 산나물을 캐던 노인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있었다. 환경부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너무 낭만적이라는 비판에 시달린 배경이다.
하지만 정작 반달가슴곰 사달은 사육농가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1980년대 농가에 반달가슴곰 사육을 장려하고 직접 보급했다. 그런 정부가 1993년 야생동물보호협정에 덜컥 가입했다. 하루 아침에 보호종인 반달가슴곰의 상업적 유통이 막힌 것이다. 이때부터 반달가슴곰은 사육농가와 정부의 지루한 책임 공방에 갇혔다. 사육농가는 수익을 위해 불법을 감행했고, 정부는 보상 없이 규제만 했다.
처인구 농가를 탈출한 반달가슴곰은 사실 2차 피해 곰이다. 농장주는 지난해 7월 구속돼 10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곰 한 마리가 탈출했는데 당국에는 두 마리로 허위 신고해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였다. 곰을 불법 도축한 사실이 드러날까봐 한 거짓말이었다. 주인이 구치소와 감옥을 전전하는 동안 남은 곰들은 방치되는 2차 가해에 시달렸고 견디다 못한 곰 다섯 마리가 집단 탈주를 감행한 것이다.
지난 겨울 내내 먹잇감 없는 용인시 야산을 헤맸을 반달가슴곰은 오히려 인간에게 포획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온다 해도 인간의 욕심과 제도가 만든 우리에 다시 갇힌다. 지리산 방사든 가축 사육이든,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신중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반달가슴곰은 무죄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