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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설 자살예방센터 /파주시 제공

지난해 7월 파주시 월롱면 소재 한 약국에 취기가 오른 70대 어르신이 수면제를 사러 왔다. 약사는 "죽기 위해서..."라는 노인에게 마실 것을 건네고 옆에 앉아 사연을 들었다. 노인은 칠순이 넘도록 결혼도 못해 자식은 커녕 더 이상 살아갈 낙이 없다고 했다. 약사는 즉시 파주시 자살예방센터(이하 예방센터)에 연락했고, 위기지원팀과 경찰이 출동해 노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이같이 파주 지역사회 곳곳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저런 가정사에 코로나19 감염병까지 장기화하면서 우울감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시민은 물론 행정기관, 학교, 정신건강복지·의료기관, 자영업자 등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약국·의원, 부동산, 상인, 택시까지 '게이트키퍼'
번개탄 등 수단 관리 철저… 환경 조성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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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마음건강 약국/파주시 제공

우리동네 마음건강 사업
파주시는 관내 약사회와 협업을 통해 주요 약국을 '우리동네 마음건강 약국'으로 지정, 방문 주민 중 자살이 우려되는 경우 즉시 유관 기관에 의뢰해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시작된 마음건강 약국은 파주시 전체 159개 약국 중 66.7%인 106개소가 지정돼 있으며, 약사들은 매년 '게이트키퍼' 교육을 받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마음건강사업은 2017년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출발했으며, 현재는 동네의원(43개소)과 한의원(23개소), 약국(106) 등 172개소가 동참하고 있다.

시는 자살의 주요 원인이 '정신건강' 문제인데도, 정작 전문 의료기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어 '접근성이 좋은 요양기관'이 자살예방을 위한 게이트키퍼가 되어야 한다고 봤다. 일선 약국과 병·의원 등은 단골 고객이 형성돼 주민과의 친밀도가 높고, 전문가로서의 신뢰도가 큰 만큼 자살 위험군에 대해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부동산중개업소와 숙박업소도 게이트키퍼로 양성하는 등 우리동네 마음건강사업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자살로 인한 사망이 주로 '자택'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자살 빈발지역의 부동산중개업소 10곳을 '마음건강 부동산', 숙박업소 6곳을 '마음건강 숙박업소'로 지정했다. 이들 업소는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고,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시는 이를 위해 해당 요양기관과 부동산중개업소, 숙박업소, 행정복지센터 맞춤형 복지팀,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협업체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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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마음동행 마음안심버스/파주시 제공

아픈 마음 살피는 '파주 마음 동행'
도·농 복합도시인 파주는 자살 사망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읍·면·동별로 찾아가는 '맞춤형 노인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찾아가는 정신건강서비스 '파마동(파주마음동행) 마음안심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파마동 마음안심 버스는 주 2회 자살 빈발지역을 순회하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전문 상담을 진행하고, 자살 고위험군 발견 시 유관 기관에 치료 및 상담을 연계한다.

올해부터는 택시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파마동 택시'로 서비스를 확대한다. 파마동 택시는 자살을 시도했다 구조된 시민이 응급실에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는 이를 위해 의료기관과 택시회사, 자살예방센터, 보건소 등이 자살시도자의 정보를 공유하며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시도자가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받으면 자살위험도가 크게 감소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자살시도자가 단 1회 사후관리를 받았을 때 자살위험도는 14.4%인데 비해 4회 사후관리를 받게 되면 그 위험도는 6.5%로 줄어든다고 한다. 시는 이에 따라 의료기관에서만 사후관리를 받거나 응급실에서 퇴원 후 지속적인 관리를 받지 못해 다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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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안전보관함 /파주시 제공

번개탄·농약 등 자살 위험 환경 개선
최근 철물점 가게 주인의 따뜻한 설득이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번개탄을 구입하려던 단골 고객의 생명을 구한 사례가 있다. 시가 관내 128개 번개탄 판매업소를 '생명사랑 실천가게'로 지정해 위급 신호를 감지하면 즉각 생명구조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는 생명사랑 실천가게 지정뿐 아니라 농촌에는 농약 안전보관함(606개)을 설치해 쓰고 남은 농약 등 독극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주된 자살 수단인 번개탄과 농약을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자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시는 또 소방서 구급팀 및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와 협업을 통해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 위험이 큰 우울증 노인,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까지 지속적인 사례 및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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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괜찮니북'/파주시 제공

특히 사례별로 개별 또는 집단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달 자조모임을 추진하거나, 안부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등 자살 재시도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는 특히 '주변의 작은 관심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즈를 내걸고, 2017년부터 매년 '파주시 생명사랑 자살예방포럼'을 개최해 연도별 자살 현황 및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토론 등 생명존중 문화 확산과 사회 안전망 구축에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도서관에 '괜찮니 ZONE'을 설치해 생명존중에 관한 서적을 공유하고, 우편함을 만들어 시민 누구나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창구를 활짝 열어 놨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파주는 노인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데다, 급격한 도시화로 가족관계 붕괴 등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유관 기관 및 지역사회가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중한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