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후보의 0.73%p 차이 패배에 대한 민주당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촛불 민심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출범한 정부가 '10년 단위의 정권 교체' 양상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이처럼 빨리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뒤 펼쳐질 만한 양상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 패배의 이유야 관점에 따라 다양할 터인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적폐 청산을 내세워서 국민의힘과 시종일관 요란하게 맞섰으나, 문재인 정부 시절 현실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개혁 약속 지키려는 의원들과
'굳이 그럴필요 까지…' 의견 분분
후자 논리는 '국힘 반대로…' 정도
가령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감싸기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전속 고발제를 폐지해야 하였으나, 민주당은 대선·총선에서의 공약을 폐기하고 전속고발제 유지로 돌아섰다. 재벌의 사익 편취 행위를 소수주주가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인 다중대표소송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수준에서 도입하였을 따름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또한 허울만 갖춘 채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민의를 반영하기 위하여 선거법을 개정하였으나, 총선에 직면하여 위성정당을 급조한 꼼수는 선거법 개정 의지를 스스로 짓밟는 행위였다. 일련의 이러한 정책 방향에도 불구하고 거둔 0.73%p 차이는 '졌잘싸'라 하겠으나, 이는 냉소로 돌아선 촛불 민심의 입장에서 터져나올 반응이지 민주당의 것일 수는 없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4일까지 촛불 아래 모였던 시민들은 현실 개혁 의지를 강렬하게 폭발시켰고, 민주당은 이를 자신들을 향한 열렬한 지지라 착각하였다. 이번 민주당의 대선 패배를 보면서 나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로를 떠올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소추를 당했다가 헌법재판소의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탄핵반대 촛불집회가 계속되었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와 맞물리면서 진행되었다. 여당 열린우리당의 과반에 해당하는 152석 확보는 촛불 민심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미온적이었다. '겨우' 과반 의석만 가지고는 거대야당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발목 잡기를 뿌리칠 수 없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였다.
180여석의 변명 과연 받아들여질까
법안통과 여부 리트머스 시험지될듯
지리멸렬한 여당의 행태는 이어졌고, 대선을 앞둔 2007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뜨거운 열망이 배신당하자 민심은 급격하게 정반대편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궁지로 내몰린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에게는 정권 재창출의 책임이 없노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어떠한 왜곡과 수모까지 당하였고, 어떠한 비극적 선택을 취하였던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과정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도 알고 있다. 민주당 사람들 또한 아마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민주당은 얼마 전 선거에서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정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내에는 그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선거가 끝난 마당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원들도 있다고 들었다. 후자의 논리는 아마도 '국민의힘에서 반대해서 관철시킬 수 없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위성정당까지 합해서 민주당은 180여 석에 이르는데, 과연 그러한 변명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정치개혁 법안 통과 여부는 민주당이 이번 대선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터이다.
/홍기돈 문학평론가·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