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또는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긴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2022년 청년작가전 '박형진:지금 이따가 다음에'는 작가가 찍어놓은 같으면서 다른 색점들로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한다.
올해 청년작가로 선정된 박형진 작가는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주변 풍경을 화폭에 기록하는 작업으로 미술계 주목을 받아왔다.
최근 진행 중인 '색점'이라는 연작에서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의 색 변화를 모눈종이에 기록하고 있다. 한정되어 있고 구분 지어져 있는 틀로 작용하는 종이의 칸들은 인간에 의해 경계 지어진 땅과 같은 의미를 포함한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러한 박 작가의 독창성에 주목했다.
'청년작가' 박형진의 자연 기록
모눈종이 등에 나뭇잎 색깔 담아
경기도미술관 8월 15일까지 전시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 '은행나무'는 이번 전시를 위해 박 작가가 선보이는 신작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모눈종이가 아닌 펜글씨 연습지인 경필서법지에 그려낸 작품이다.
가로와 세로, 대각선까지 그려져 있는 종이 한 장 안에 은행나무의 다양한 노란색이 존재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조금씩 다른 색들이 찍혀있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면 그 색들의 오묘한 변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듯하다.
한 칸에 하루씩, 변화하는 나무의 색을 담아낸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나뭇잎의 색깔에서 보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는 그리움, 추억, 회상과 같은 마음속 감정들을 이끌어 낸다.
푸릇한 초록색이 싱그러운 작품 '토끼풀'은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한 '녹색'의 본질이 가장 잘 담긴 작품이다.
동료의 전시에서 본 토끼풀 화분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맑은 초록색을 통해 '행운'을 뜻하는 꽃말처럼 밝고 따뜻한 기운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바로 '매듭 없는 동그라미'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었던 2020년부터 시작한 작품으로 작가는 매일 발표되는 확진자의 숫자를 모눈종이에 기록했다. 그 수만큼 모눈종이의 칸마다 동그라미를 채워 넣었고, 격리에서 해제된 수만큼 지우개로 동그라미를 지워나갔다.
1년 8개월의 시간 동안 232장의 모눈종이에 담은 동그라미는 팬데믹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작가의 집요함과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쪽 편에 놓인 동그라미를 지운 지우개 가루는 그간의 작업 여정을 나타내면서 우리가 버텨온 지난날들을 상기시킨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