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우리의 연방을 완성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에 임명된 커탄지 브라운 잭슨의 첫 공개 연설은 역사적 감회로 벅찼다. 미국 민주주의는 흑인과 여성을 제외한 백인 남성의 민주주의로 시작했다. 흑인은 1870년 수정헌법 15조를 통해 참정권을 보장받았지만 백인들은 일명 '짐 크로 법'으로 흑인의 민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1964년 민권법으로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기까지 흑인이 당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여성들도 1919년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참정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그나마 연방선거에만 가능했다. 연방에 속한 각 주(州)의 주 선거 여성 참정권은 미시시피주가 마지막으로 인정할 때까지 미뤄졌다. 1984년의 일이다.
미국 헌법의 수호기관인 연방대법원도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흑인과 여성에겐 오랜 세월 유리천장이었다. 1790년 헌법 제정과 함께 시작된 연방대법원 232년 역사에서 커탄지를 포함해 흑인 대법관은 3명, 여성 대법관은 6명이 고작이다. 중복 차별의 상징인 흑인 여성의 연방대법관 인준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이다. 연방대법원의 마지막 차별 철폐로 모든 미국인이 평등한 미연방의 꿈이 완성되는 서사가 가능해졌다. 커탄지가 "나는 노예의 꿈이자 희망"이라 자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역사에서 진정한 변화의 순간"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역사적인 커탄지 대법관 탄생에는 미국 정치의 양심도 일조했다. 바이든은 흑인 여성 연방대법관 지명을 공약했고 지명했지만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했다. 2020년 트럼프가 지명한 강경한 여성 보수인 에이미 코니 배럿을 민주당 상원의원 48명 전원이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공화당 상원의원 50명 중 3명이 커탄지 인준에 찬성해 53표 대 47표로 통과됐다. 공화당 의원의 소신투표가 아니었으면 역사도 없었다.
바이든은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밋 롬니,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 이름을 거명하며 "당파성을 제쳐놓고 판단을 내려준 데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고 감사를 표했다. 정파적 대립을 초월한 소수의 양심과 소신이 멋들어진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의 저력이다. 새 정부의 주요 공직자 청문회와 인준이 줄줄이 대기 중인 우리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