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균열은 비단 젠더균열만이 아니다. 군부권위주의체제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의 사회균열은 거의 30여 년을 지배했고, 그러한 균열에 기초한 정치적 언어들이 여전히 사용된다. 기득권 적폐세력이니 신적폐세력이니 하는 언어들은 상대를 경제적, 정치적 독점세력으로 다중적으로 규정하지만 민주 대 반민주의 프레임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뒷받침하면서 한국 현대정치사를 가로지르는 가장 구조적인 균열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지역균열이다. 이 지역균열은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산업화기의 불균형발전과 광주의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지역차별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발전단계가 부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에 이르고, 경제가 저성장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둘러싼 세대균열 또한 엄청난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전망을 내세우지만 나이든 세대들은 그들의 지위를 과도한 기득권으로 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양 세대를 만족시키려는 포퓰리즘적 대안은 현 정부 하에서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성장과 환경의 균형에 초점을 둔 생태주의적 균열 역시 그 뿌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탈원전을 둘러싼 갈등은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대안도 없이 정치화되었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균열의 기저에는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균열이 자리잡고 있다. 서구적인 계급갈등과 계급정당체제는 아니지만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양축으로 하는 사회균열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업발전 단계에 따른 비정규직 등 고용문제, 경제의 대외의존성 등을 고려한다면 계급균열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상적으로 보면, 자유민주주의사회의 대의체계는 이러한 다중적인 사회균열을 중첩적으로 짜깁기한다. 사회경제적 집단들간의 정치적 대표성과 더불어 젠더, 민주주의, 지역, 세대, 생태주의 등에 따른 사회균열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정당과 정치세력을 구성한다. 제도권 정치체계와 거리를 두고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대표한다. 그 이유는 제도정치의 대표성이 가장 주요한 사회균열에 집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엘리트와 대중간의 균열이라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후보·정당·사안 입장 팽배
진영 따라 젠더균열도 좌우균열도
모두 뭉뚱그려졌고, 시민사회 역시
정치진영 안으로 복속되어 버린 것
그 결과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 커져
이번 대통령선거는 거대한 진영간 대결이었다. 막역하던 친구들조차 정치적 지지진영이 다를 경우 연락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서로 지지후보가 다른 사람들간에 말다툼에 주먹다짐까지 벌어지곤 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런 표면적인 갈등은 사라지곤 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그리고 선거를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통합하는 방안, 혹은 잠정적인 해결책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처럼 후보와 정당, 그리고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과 입장이 팽배하게 맞서고, 선거 이후에도 단 하루의 허니문도 없이 탄핵이나 청부살인까지 거론되는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당선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기대감이 선거지지율을 약간 상회하고 낙선자와 그 정당 지도부가 곧바로 정치일선에 다시 등장하려는 경우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더욱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그 근거도 명확하지 않은 거대 양진영간 균열 안에 다른 사회균열들이 다 휩쓸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여러 사회균열과 그에 바탕을 둔 사회정치적 갈등이 서로 교차하면서 일시적인 연합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진 진영갈등 속에서 다른 사회균열이 그 정치적 해소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진영을 따라 젠더균열도 지역균열도 환경균열도 좌우균열도 모두 뭉뚱그려졌고, 시민사회 역시 그러한 정치진영 안으로 복속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정치적 동원은 엄청나게 활성화되었지만 그 무능과 비효능감으로 인해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