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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오랜만에 회식이란 걸 했다. 새로운 구성원들이 만난 자리라 낯설 법도 한데, 모두들 너무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술을 먹는다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신나게 고기를 굽고, 서로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웃고 떠들다 보니 꽤 오래 전 부산에 놀러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핑계 삼아 부산까지 간 참이었다. 충동적인 여행이었기에 영화는 한 편 봤고, 그나마도 조느라 제대로 못 봤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시원한 가을 바람과 정겨운 부산 사투리를 듣는 재미로 하염없이 걸어다니던 밤거리에서 신기한 포장마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거리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부산의 꽤 큰 번화가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였다.

온갖 음식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그 포장마차는 손님들이 주인장에게 "오빠, 나 이거 해도. 양 많이!"를 외치는 곳이었다. 우리 역시 안주를 주문하는 우렁찬 사투리에 반해 남아 있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앉아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여기 오면 이걸 먹어야 한다"라며 바로 추천이 들어왔다. 그 오지랖이 피곤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은 분리되어 있지만, 포장마차를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섞으며 일행처럼 노는 분위기였다. 옆자리에서 먹고 있는 안주를 쳐다보다가 "옆자리랑 똑같은 거 달라"고 시키기도 하고, "어디서 왔냐" 물어보며 서로의 안주를 나눠먹기도 했다. 부산영화제 기간이라 외지인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르고, 그날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낯선 이에 대한 환대와 서로에 대한 너그러움이 넘치던 가을밤이었다. 살짝 취했던 우리는 처음 안주를 추천해줬던 바로 옆 테이블의 안주를 반이나 뺏어먹고, 우리가 시킨 안주가 나오면 옆 테이블에 다시 덜어주고를 반복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핑계 삼아 간 여행
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안주도 나눠먹고 웃으며 이야기꽃


사람간의 접촉이 금기시되는 코로나19 시대에는 시도는커녕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날 부산의 포장마차에서는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우리 테이블뿐만 아니라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처음 만났지만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참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포장마차에서 파는 메뉴는 삼겹살숙주볶음, 오뎅볶음, 스팸볶음밥 등으로 일반적인 포장마차에서 파는 메뉴와는 좀 달랐다. 주문과 동시에 바로 조리가 시작되고, 3분 이내에 뚝딱 음식이 나온다. 볶음밥에 들어가는 밥은 데우지 않은 햇반. 스팸을 통조림째로 쓱쓱 썰어 넣고 양파며 당근, 소량의 조미료도 빠지지 않는다. 아저씨로 보이지만 굳이 '오빠'를 고집하는 주인은 음식을 만드는 내내 소주를 홀짝인다. 약간씩 술이 들어가야 음식이 더 맛있다나. 술의 효과인지 몰라도 안주는 나올 때마다 바로 접시를 비울 정도로 맛있었다.

신나게 마시던 우리가 화장실을 찾았더니 화장실은 골목골목을 지나 좀 많이 먼 데 있단다. 설명해도 길 모르는 우리 같은 외지인에게는 꽤 난코스. 갸웃거리는 우리를 본 주인장이 "기분이다!" 외치더니 자기 출퇴근용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설마 했는데 "잠깐 가게 좀 보고 있으라"고 손님들에게 가게를 맡기더니 오토바이에 우리 둘을 다 태우고 화장실까지 데려다주는 게 아닌가! 화장실 간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오토바이에 비스듬히 기대선 주인장이 담배를 어찌나 맛있게 피던지 나도 한 대 달라고 말할 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낯선 동네의 밤거리를 가르는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와 그 바람이란! 그날 골목을 가르던 부산의 밤공기는 참 짜릿했다.


오토바이로 화장실 데려다준 주인장
딱 하룻밤의 기억… 다시 가고 싶다


마음이 부대낄 때면 가끔 그 밤을 떠올린다. 밤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번화가 한 구석의 포장마차,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 주인장이 손님을 화장실까지 데려다주는 특급 서비스를 해주는 곳…. 딱 하룻밤의 기억이기에 좋은 부분만 유독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무조건적인 환대에 충만해졌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벚꽃이 확 피었다가 지기 시작하는 봄, 비 예보가 있어 꽃이 질 것임이 자명해 괜히 섭섭하기까지 한 봄의 끝자락, 다시 한 번 그 마법의 포장마차에 가보고 싶어진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