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1월, 만삭의 산모가 인천 길병원 문을 두드렸다. 출산예정일을 앞두고 산모의 양수가 갑자기 터졌는데, 인큐베이터가 없는 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 급히 찾은 것이다. 길병원 산부인과팀이 분만을 도와 출산을 했는데, 네쌍둥이 여아 모두 건강했다.
신생아들 아빠는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기쁨보다 출산비 걱정이 앞섰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이길여 당시 원장(가천길재단 회장)은 병원비를 받지 않았다. 산모와 아이들이 퇴원할 즈음, 이 원장은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에 입학하면 등록금을 대줄 테니 연락해 달라"고 했다.
2006년 어느 날 사진첩을 보던 이 회장은 네쌍둥이와 찍은 사진을 보면서 당시 약속을 떠올렸다. 수소문 끝에 용인에 사는 가족을 찾았다. 우연히도 네쌍둥이 모두 간호학과에 합격한 예비대학생들이었다. 이 회장은 입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했고, 졸업 뒤 취업을 약속했다. 네 쌍둥이는 전원 길병원 간호사가 됐고, 셋은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길병원과 설, 솔, 슬, 밀 네 자매 이야기다.
지난해 11월 서울대병원에서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 국내에선 1987년 이후 34년 만에 맞는 경사라고 한다. 서욱 국방장관도 병원을 찾아 축하하고 유모차를 선물했다. 부모는 인천시 계양구 관사에 거주하는 현역 군인 부부다. 출생 당시 1㎏에 불과했던 아이들 몸무게는 5개월 만에 4㎏을 훌쩍 넘었다. 딸 넷에 아들 하나를 키우는 부모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면서도 아이들이 모두 건강해 기쁘다고 했다.
다섯 쌍둥이를 향한 지역사회의 온정이 푸근하다. 지역 민간 친목단체인 계화회 회원들은 지난 13일 구청을 방문해 성금 500만원을 전했다. 계양구는 범위를 넓혀 다섯 쌍둥이 중 4명에 매월 양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저출산이 국정 난제가 된 지 오래다. 여주시는 11만명 인구에 유권자가 9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무자녀 가정이 많고, 한 명도 대견한데 다둥이를 둔 부모라면 애국자가 분명하다.
다자녀 부모가 즐겁고 행복한 나라가 돼야 미래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 '빠르게 가'야 한다. 다섯 쌍둥이 엄마 아빠가 웃을 수 있는 육아 환경이라면 저출산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