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T.S.엘리엇(1888~1965)의 장시 '황무지'(1922)의 첫 대목이다. 433행의 장시인 데다 셰익스피어와 단테의 작품이 인용되고 여러 개의 외국어를 섞어 썼다는 난해성도 화제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어째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에 대해서다.
4월은 부활의 계절이다. 기독교의 부활절이 있어서가 아니라 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부활의 계절이 바로 4월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활의 4월을 엘리엇은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내용을 보면 부활의 계절 4월을 예찬하려는 역설적 표현은 아니겠고,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구 문명과 동시대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관과 비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터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하겠으나 이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좁혀 놓고 보면 인생에 대한 회한과 통찰도 담겨 있는 듯하다. 인생의 시간은 불가역적이어서 한번 지나간 시간과 청춘을 다시 되돌릴 기약이 없는데, 자연은 끝없이 순환하여 매년 봄마다 저렇게 아름다운 꽃망울을 피워내니 어찌 잔인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가 하면 4월은 우리에게는 정치적 부활의 계절이기도 하다. 3·15부정선거에 대한 항의 시위에서 촉발된 4·19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서막을 연 민주화 운동의 마중물이었다. 4월 18일 고려대생들의 시위와 유지광이 지휘하는 정치깡패들의 테러, 그리고 4월 19일로 이어진 학생들의 항거는 급기야 4월 25일 교수들의 시위를 불러왔고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성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4· 19는 미완의 혁명으로 항거와 분노 그리고 열망은 뜨거웠지만 혁명 이후의 미래상에 대한 자각과 방향이 분명하지 못해 혁명의 성과가 비혁명적으로 마무리되고 결국 5·16 쿠데타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이 숭고한 사건을 4·19혁명이라 하는데 있다. 원래 혁명은 날짜가 아니라 2월 혁명·7월 혁명·10월 혁명 등처럼 '월' 단위로 묶어 지칭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4·19혁명이라 할 것이 아니라 4월 혁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