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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소프라노) 장신대 외래교수·행복한예술재단 이사장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전면해제되는 분위기다. 코로나에 짓눌린 지난 2년4개월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인류의 암흑기였다. 우울했던 '코로나 블루', 분노가 폭발한 '코로나 레드', 좌절과 절망의 '코로나 블랙'으로 이어진 악몽의 시기였다. 강제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로 인해 누군지도 인식할 수 없고, 소통과 대화가 불가능한 단절의 시대였다.

그 와중에 위로가 된 것은 바로 한 잔의 커피와 함께하는 한 소절의 음악, 한 편의 가곡, 한 곡의 오페라 아리아였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 한 편이 고통스러운 우리 가슴에 오아시스와 같은 희망을 전하곤 했다.

독자들은 영화 '쇼생크의 탈출'을 기억할 것이다. 부인을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옥 같은 쇼생크 감옥에 수감된 주인공 앤디는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감옥의 죄수들은 삶을 포기한 채 교도관들의 눈치를 보며 좌절했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끝까지 희망을 품고 탈출에 성공하는 이야기는 관람하는 133분 내내 숨막히는 긴장과 설렘, 인간의 나약함과 희망, 극복의 드라마로 전개된다.

영화 속 교도소의 살벌한 풍경 와중에 앤디는 교도소장의 방에서 몰래 모차르트의 LP판을 집어든다.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와'(Sull'aria)가 3분 정도 짧은 순간 교도소 운동장에 울려퍼진다. 여기에는 우리 삶의 청량제와 같은 '자유'와 '희망'의 강렬한 메시지가 오롯이 새겨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 부인과 수잔나가 부르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와'는 '편지의 2중창'으로도 불린다. 오페라 3막에 등장하는 이 아리아는 백작을 유혹하는 편지를 쓰는 장면에 등장하는 백작 부인과 수잔나의 감미로운 2중창이다. 백작 부인이 내용을 부르면 수잔나가 받아 적는 방식으로 편지를 쓰고, 그 장면은 백작 부인의 선율을 시간차를 두고 수잔나가 따라가는 형태의 음악으로 묘사된다. 8분의 6박자에 3도 화음이 아름답게 진행되는 2중창이며 기악곡으로도 연주되곤 한다.

필자도 즐겨부르는 레퍼토리여서 음악회 때마다 자주 부르곤 했다. "밤하늘에 빛도 없고 온누리는 어둡고 고요하네. 시냇물은 종알대고 미풍이 불어오네, 미풍이 내 마음을 달콤하게 해. 이곳의 풀과 꽃들은 신선해, 나의 기쁨과 사랑으로 이곳으로 오너라. 오라, 내 사랑이여 은밀한 넝쿨 속으로. 그대의 이마에 장미를 씌워 주리라."

이 음악을 들은 죄수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경탄, 희망이 교차된다. 음악 한 편이 포기한 그들의 삶에 생기와 희망, 열정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위대한 힘이다.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하이라이트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이다. 오페라 '나부코'는 바빌로니아 왕국의 통치자 나부코왕이 유대 민족을 침략하는 구약성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가라 나의 고향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포로로 끌려와 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 노예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조국을 향해 부르는 명곡이다. 이 곡이 초연될 당시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 치하였다. 베르디는 이 합창곡으로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염원하는 이탈리아 국민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어놓았다. 조국을 뺏긴 자들의 이심전심은 이 아름다운 선율의 합창을 통해 세상 곳곳에 울려퍼지고, 모든 이방인들의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위로해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는 코로나시대에는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인류의 희망과 꿈을 상징한다. 역시 음악과 예술의 무한한 힘을 잘 보여준다.

필자는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인 팬데믹 발생 이후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 위한 자선음악회를 10여차례 열었다. 많은 이들은 후원과 격려를 해주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과 환호, 박수로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전해줬다. 늘 감동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외국곡뿐 아니라, '마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리운 금강산' 등 우리 가곡들은 시와 결합된 음악예술인 탓인지 객석의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곤 했다. 필자가 최근 부른 새 경기도의 노래 '경기도에서 쉬어요'를 유튜브에서 본 많은 도민들이 댓글과 메시지로 응원해주는 것도 이 같은 음악의 감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어두운 바이러스 감염의 긴 터널을 서서히 나갈 시간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는 날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나눠 부르며, 감동의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독자 여러분께 음악의 위대한 힘을 우리 인생의 벗으로 함께 동행하길 제안드린다.

/박소은(소프라노) 장신대 외래교수·행복한예술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