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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겨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미국 아이돌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공연을 했다.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나타난 멤버들을 보려 관중이 무대 쪽으로 몰렸다. 앞자리 관객들이 밀려 쓰러지고 밟히면서 참극이 발생했다. 5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고, 여고생 1명이 숨졌다.

현장은 울거나 신음하는 관객에 TV 뉴스를 보고 달려온 가족, 경찰, 소방대원이 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수용인원을 초과하는 표가 발매되는 등 과도한 상업주의에, 안이한 안전의식을 개탄하는 비판 여론이 높았다.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이 그룹 이름을 모티브로 한 예능프로그램이다. 배경 음악으로 대표 히트곡 'Step by Step'이 자주 나온다. 2018년 방송 초기엔 유재석과 조세호가 공동 MC로, 길거리에서 시민을 캐스팅해 일상을 들어보고 문제를 맞추면 상금을 주는 포맷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스튜디오에 출연자를 초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1%를 밑돌던 시청률이 3~5% 사이를 오가는 인기 프로그램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 프로에 나와 대선 이후의 근황과 지난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코앞에 두고 절친의 함을 지러 열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본 대목이 문제로 출제됐다고 한다. 막내 검사 시절, 점심 당번을 했는데 상관들 마음에 들었는지 후임이 왔어도 물려주지 못했다며 음식과 요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방송된 지 한 참이 지났는데 정치권과 누리꾼들 공방이 여전하다. 예능을 정치로 오염시켰다는 비판에, 뭐가 잘못이냐는 반론이 맞선다. 문재인 대통령도 출연하고 싶었는데 거부됐다는 청와대 말에 전선이 확대됐다. 현 여권 인사는 '진행자가 정치인 출연을 원치 않았다고 하는데 당사자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쪽이 '해명은 제작진이 해야지 유재석이 할 건 아니다'라고 감쌌다.

유재석은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방송인이다. 출연자 결정과 섭외는 PD나 CP 영역이다. 당선인이 출연한 배경은 사측이 밝힐 일이다. 제작진은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 달라'고 했다.

누리꾼은 셀럽에 민감하고, 정치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부풀리는데 능하다. 예능을 예능으로 보지 않고 정치의 눈으로 보니 조용할 날이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