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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여행을 다녀오면 엄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밥솥에서 밥 한 주걱을 크게 펐다. 각종 산해진미를 맛보고 왔을텐데도 쌀밥을 먹지 않으면 어딘가 속이 허하다고 했다. 밥 한 숟갈을 크게 뜨고 나서야 이제야 좀 힘이 난다고 말했다. 김포 통진면에서 5천년 전 탄화된 쌀이 발견된 점을 미뤄보면 쌀은 한민족의 수천년 역사와 함께 해왔을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쌀의 힘이 각인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따끈한 쌀밥 한 숟갈을 먹어야 비로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덧 쌀은 힘을 잃었다. 쌀을 먹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이 30년 전인 1991년의 반토막이 됐다는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장 오늘 아침부터 점심까지 돌이켜보니 쌀을 단 한 톨도 먹지 않았다. 아침을 거른 채 하루에 두 끼만 먹는 날이 허다하고 그나마도 밀가루와 고기 등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쌀 소비가 줄어드니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쌀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돼, 수요가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어나니 가격이 급락한다. 지난해 쌀 농사가 풍년이었지만 누구도 웃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쌀농사를 너무 많이 짓지 말자고 정부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현주소다.

사실 경기도는 유서 깊은 쌀의 고장이다. 지역 곳곳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쌀농사를 지어왔다. 31개 시·군 중 상당수는 지역 대표 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물맑은양평쌀, 슈퍼오닝쌀, 김포금쌀, 수향미, 임금님표이천쌀, 대왕님표여주쌀 등 내로라하는 쌀들이 경기도 땅에서 농부의 땀방울로 재배된다. 쌀이 본연의 힘을 잃은 이때, 경기도 농업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경기도민들만이라도 경기도 쌀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으면 하는 게 지역 농민들의 바람이다. 쌀을 먹지 않는 시대, 경기도의 쌀을 알리는 기획기사 연재를 시작한 이유다. 경기도 쌀들이 다시 힘을 얻길, 백옥의 제 빛을 발하길 소망한다.

/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