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끝에 지킴이 떠나면 / 속살 깊이 차곡차곡 쌓아둔 / 아무에게도 절대 보여 준 적 없는 / 곱디고운 사랑 이야기 / 아직도 새것 같은 꿈의 동선 / 매끈한 욕망의 그루터기 / 누군가가 제 것인 양 낼름 챙겨 가겠지 / 그리고 으스대며 말하겠지 / 본래 이것들은 다 내것이었다고…
하여 / 나는 처음부터 / 이 세상에 없었던 거지 / 아무렴 /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 없었던 거지
-장렬
첫사랑은 영원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현존하지 않으나 가슴 속 깊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꿈의 동선, 지금 함께하는 사랑이 있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고 가끔은 비교하게 하는 그런 사랑, 그게 첫사랑이다. 누구나 가진 곱디고운 사랑 이야기, 사람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구름 같은 존재라고 칭하는 것은 전부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삶의 부제다. 이것은 장렬 시인이 확인시켜준다. 그리스도교에서 부제는 가장 기본적인 조력자를 말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사제 임명을 받기 전 수련하는 직책이다. 영세 성사를 베풀고 영성체 때 성체를 나눠주며 설교하는 등 여러 가지를 주관하는 직책이다. 종교를 떠나면 여러 가지 상황의 삶에서 준비해두는 생활방식도 될 수 있고 하나가 모자라면 보충해 줄 수 있는 물질이며 언어의 소재에서 미리 생각해 두는 대비의 단어다. 장렬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떠나버린 사랑이 없어진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라고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사랑이 없는 삶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모두 사랑에 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랑의 고백을 시인답게 한 작품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