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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에서 협의, 합의, 약속 이행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공존하기 위해 협의하면 마땅히 합의가 붙고, 그 합의를 이행함으로써 미래 협의의 장을 열어둔다.

검수완박이 어떻게 읽혔을지는 각자의 마음에 있을 테지만 하나 분명한 건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22일, 나흘간에 걸쳐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는 주장하고 갈등하고 새벽에 만나 논의한 끝에 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논란이 있던 검찰개혁법안은 양당 합의로 균형점을 찾았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인수위마저 수용의사를 밝혀 의미 있는 합의라고 생각했다.

국민의힘은 불과 사흘 만에 최고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를 뒤집었다. 그렇다고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합의를 파기한 이후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검찰개혁 관련 법안들은 국민의힘의 검토를 거쳤다.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들은 '의장의 뜻'으로 포장된 국민의힘 요구대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표결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21대 국회가 후반기를 맞이한다. 바싹 약이 오른 더불어민주당은 후반기 원구성에서 법사위원장을 맡겠다고 한다. 2년 전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후반기에 법사위 위원장을 국민의힘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검찰개혁법안 합의가 깨질 당시 원구성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이미 나왔다고 한다.

소탐대실일 수 있다.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나도 약속을 안 지킨다'는 편의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주로 국민의힘 패널로 등장하는 장성철 교수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들이 그랬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라고 해야 국민과 중도층이 정권교체를 잘했다고 박수를 치지 똑같으면 국민들이 얼마나 불행한가." 그 말 그대로 민주당에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민주당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의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우린 천금같이 여깁니다. 앞으로도 미래에도 우리는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지킬 것입니다. 그것이 가시밭길일지라도."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