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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1941~2022)는 시인이다. 시인을 두고 시인이라 함은 명백한 동어의 반복일 것이나 김지하에게 헌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오직 이뿐이다. 그는 시인으로 태어나 시인으로 살다가 이제 불멸의 시인이 됐다.

그는 1963년 김지하(金之夏)란 필명으로 처음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문학으로 또 맨몸으로 시대와 맞섰다. 독재권력 앞에서 세상이 숨죽이며 무거운 침묵에 빠져 있을 때 불의와 부패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의 언어들을 쏟아냈다. '사상계' 폐간 원인이 된 담시 '오적'(1970)으로 그는 일약 저항시인으로 떠올랐다. 이에 앞서 1964년 한일청구권 반대 시위로 4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고, 1972년 독재 권력의 횡포를 폭로한 담시 '비어'를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1975년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음을 알리는 글을 발표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고문과 투옥으로 이어진 수난과 저항의 삶이었다. 그는 저항문학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그가 1991년 대학생들의 연속되는 분신과 투신 등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지자 이를 죽음의 굿판이라 비판하여 민주화 운동 진영과 척을 지었고,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선언을 함으로써 그를 지지해왔던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독재 권력이든 민주 진영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철학, 자기사상에 투철하고자 했다.

그러면 그의 자기 철학과 자기 사상이란 무엇일까. 동학·증산교·원불교로 이어지는 개벽사상을 생명운동으로 재해석해낸 '사상기행'(1999)과 '율려론'에서 그 단초를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지적 탐색은 주로 동학과 증산교를 중심으로 한 민중사상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서양발(發) 변혁이론과 차별화한 새로운 사유를 찾고자 하는 지적 모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공자의 정치철학이 집약된 대학의 '대동사상' 등의 동아시아 사상이 후기의 김지하가 관심을 둔 분야였다.

이를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아직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그의 공과 과에서 공에 더 주목하고 싶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려던 저항시인, 바보 시인 그래서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었던 김지하가 지난 8일 육신을 벗었다. 시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