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협성대-경영학과교수.jpg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
어느 소개팅 현장. 교통정체로 그만 약속 장소에 20분 늦게 도착한 여자. 기다리던 남자는 인사도 나누기 전 입을 뗀다.

"수능 보셨어요?" "네?" "그때도 늦었나요?" "차가 갑자기 막혀서 그랬습니다." "그럼 좀 더 일찍 출발하셔야죠. 저는 뭐 헬기 타고 온줄 아세요!"

이걸 끝으로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뭐가 꼬인 걸까. 여자는 차 막히는 거 감안해 일찍 출발했어야 했고, 늦을 것 같았으면 미리 양해를 구했어야 했건만 첫 만남부터 그걸 소홀히 했다. 남자보다 먼저 혹은 정시에 도착하면 뭔가 자존심 상한다는 꼰대 생각이 그녀를 지배한 탓일까. 한편 남자는 약속 장소에 10분 미리 도착해 화장실도 다녀오고 느긋하게 만남을 준비했다. 평소 시간관념이 철저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늦은 약속을 수능과 헬기에 빗대곤 곧장 자리를 뜬 행동은 아쉽다.(첫 인상이 별로였나….)

"차가 갑자기 밀려서." "돌연 중요한 연락이 와서." 스마트폰의 등장과 내비게이션의 발달로 우린 생활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위치 정보에다 교통 흐름까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돼 지각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덕분에 골칫덩어리 '코리안 타임'도 말끔히 사라질 줄 알았다. 생각이 순진했다. 줄긴 했으나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는 게 우리네 약속시간이다.

시간을 한참 넘기고서야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라며 전화를 주는 습관도 문제다. 또 '○○장(長)'이란 견장이 붙는 순간부터 각종 모임엔 늘 10분 정도 늦게 얼굴을 내민다. 마지막에 '짜잔'하고 모습을 드러내야 '얼굴이 선다'는 지병이나 이를 허용하는 조직문화도 고질병이다. 


회사, 직원 1인 시간당 2만원 지불땐
회의 1분 지각 10명 환산 3330원 손실


몇 해 전 연구년 차 도쿄에 머물렀다. 총장·교수와 식사약속을 하면 총장은 30분 전 역에 도착해 어슬렁거리다 15분 전 식당에 나타나 필자를 당황케 만들었다. '전차가 늦는다면 손목시계를 의심하라'. 이런 우스개가 회자되는 문화라면 사회경제적 비용은 참 적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질문이다. 잠시 뒤 직원 열 명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데 직원 한 명이 조금 늦게 회의실에 도착, 회의는 1분 정도 지연됐다. 그로 인해 초래된 손실은 얼마일까? "사람 참 쪼잔 하기는…. 1분을 가지고." 에두른 말로 넘어갈 때가 아니다. 단 1분일지라도 월급 받는 직원으로선 응당 업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게 직원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요 도리다. 한 명이 늦는 바람에 회의는 1분 늦게 시작됐다. 회사는 업무 성과를 전제로 직원을 고용했고, 매월 그에 걸맞은 급여를 빠짐없이 지불한다. 그럼에도 직원 10명은 1분 지연이란 성과 창출에 어긋난 행위로 회사에 유무형의 손실을 끼쳤다.

손실비용을 따져보자. 회사가 직원 한 명에게 지불하는 금액은 시간당 평균 2만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1분당 지불액은 2만(원)÷60(분)=333(원/분). 이를 직원 열 명으로 환산하면 333(원/분)×10=3천330(원/분). 이른바 날려버린 1분에 회사는 3천330원을 지불했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데 쥐 잡다가 쌀독 깨겠다며 푸념 반, 항의 반으로 반격해올 수 있지만 변함없는 건 3천330원이 그대 주머니 속에서 나온 게 아니란 사실. 회사에서 모두 감당해야 하는 불필요한 돈이다. 1분이니 이 정도 금액이지만, 가령 해당 직원이 5분 지각을 했다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손실은 5배로 껑충 뛴다. 생돈 1만6천650원이 훨훨 허공으로. 이 금액은 최저임금 9천160원(시간)의 1.8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한 명을 두 시간 가까이 고용 가능한 적지 않은 돈이다.

내 지갑에 꼬불쳐 둔 1만6천650원을 누가 몰래 빼간다면 기분이 어떨까? 껌 씹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진 않을 터. 다만 그게 회사 돈이니 애틋함이나 분노가 없을 따름이다.

약속 안 지키는건 예의 안 갖춘 증거
뭣보다 고착화되면 경제적 감내할
기회비용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어


약속은 한 인간의 품격 수준을 엿보는 고성능 가늠자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는 건 상대를 만날 준비도, 대화할 태도도,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춰 있지 않다는 증거다. 오직 상대의 한정된 삶을 갉아 먹는 '좀비'와 다르지 않다. 뭣보다 고착화되면 국가 경제적으로 감내해야 할 기회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