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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오는 9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1948년 정부 수립 후 74년간 유지된 형사·사법시스템이 완전히 뒤바뀌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주도한 것은 애석하게도 '정치'였다. 평범한 시민들이야 평생 경찰서 한번 안 갈 것 같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가해자나 피해자로 수사에 연루된다면 그 자체로 삶에 큰 영향을 받기에 무엇보다 이런 제도변화는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또한 법조 3륜이라 불리는 법원·검찰·변호사는 형사·사법시스템을 무대로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이니 이들의 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번 검수완박 법안은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없이 한 달 만에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국민 여론 역시 반대비율이 높고 이해당사자인 검찰을 제외해도 법원과 대한변협 심지어 학계까지 반대의견이 상당했지만 철저히 배제됐다. 그 과정에서 다수당의 입법독재를 막고 소수당의 입법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여야 간 입장 차가 큰 법안에 대해 숙고토록 한 안건조정심의회는 의원사보임과 위장탈당으로 17분 만에 종료됐고, 본회의 무제한 토론 역시 회기 쪼개기 수법에 한순간 무력화됐다. 이는 다수당이 된다면 법안통과를 위해 어떤 꼼수를 써도 된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회주의의 후퇴로 볼 수 있다.

2021년 1월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6대 주요 범죄로 대폭 축소됐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는 대신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보완수사 요구권이 도입됐다. 이로 인해 경찰로 대거 사건이 집중되며 수사가 부실해졌고,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보완수사를 매개로 검찰과 경찰이 서로 사건을 주고받으며 장기간 사건이 지연되는 상황까지 겹치며 사건 관련자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법안은 최종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시간을 두고 폐지하고 검찰의 역할은 기소로 한정했다. 단순폭력 사건도 1년을 넘게 끌 거라는 일선 변호사들의 푸념은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검수완박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정치인 같은 사회지도층은 70년 권력비리 수사의 노하우를 가진 검찰의 수사권이 사라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히려 법률가인 검사의 스크리닝(screening)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수사를 받는 일반 국민들이야말로 당장 법률가의 조력이 절실해졌다. 그렇기에 경찰이 검찰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우기까지 형사사건에 특화된 변호사들의 몸값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거기에 금융범죄나 지능적인 사기범죄의 경우, 이를 수사한 경험이 많은 경찰서와 그렇지 않은 경찰서 간 수사력 차이가 극명하기에 피해자의 권리구제 역시 복불복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또 검수완박 법안은 경찰의 무혐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에서 고발인을 제외한다는 점에서 피해자 구제를 어렵게 한다는 비판 역시 제기된다. 사실상 경찰의 무혐의 결정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단심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과 시민단체의 공익고발뿐 아니라 선관위나 국민권익위 등 국가기관이 고발한 사건도 경찰의 무혐의 결정 한 번에 더는 다툴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검찰이 송치 요구한 사건은 동일 범죄에 대해서만 보완수사가 가능하다'는 규정 역시 문제이다. 별건수사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오히려 제한적인 보완수사로 인해 사건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여죄수사가 위축된다는 점에서 국민이 아닌 범죄자에게 박수받을 일이다. 실제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역시 기존 아청법위반의 범죄혐의에 여죄수사로 밝혀낸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추가돼 징역 42년의 형량을 받았다. 최근 가평 계곡살인사건 역시 경찰이 1년6개월간 수사 끝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검찰이 10개월간의 집중수사 끝에 2건의 살인미수 범행을 인지하기도 했다. 만약 여죄수사가 없었다면 누가 웃었을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검수완박, 기꺼이 웃으며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누구를 위한 검수완박인가. 애석하게도 국회엔 답이 없어 보인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